한국일보

뉴욕한인사회와 미주한인의 날

2009-0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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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커네티컷주립대 명예교수/정치학박사)

1960년 뉴욕 한인회를 창립할 때 창립 멤버로 참가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지금에 와서 볼 때 뉴욕의 한인사회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1960년 컬럼비아 대학원에 다닐 때 뉴욕지역 한인 유학생회 회장으로 한인회 창립에 참여한 바 있기 때문에 감회가 더욱 깊은지도 모른다. 49년 전 한국에서는 3.15 대통령 선거 부정
사건으로 정의에 불타는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4.19 학생혁명으로 이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수립되었다.

뉴욕에는 각대학에 한국유학생이 50-60명 정도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조국에 기여하는데 전념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 부정선거로 정의에 불타는 한국 학생들은 한국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거행했다. 한국에서 데모하다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남학생은 팔에 검은 완장을 두르고 여학생은 검은 리본을 머리에 달고 참여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한국의 학생들을 지지했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새로운 선거를 거쳐 민주당 정부가 출범됐다.


뉴욕에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유학을 하고 정착한 몇사람이 한인 유학생회의 협조를 얻어 6월12일 뉴욕한인회를 조직했다. 나는 뉴욕지역의 전체 유학생을 대표하여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노재봉씨와 함께 초대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다.1960년 뉴욕한인회 창립에는 강한모, 김준성, 김형린, 한영교 등 한인들은 10명이 넘지않았기 때문에 학생회 간부가 적극 참여하여 많은 일을 했다. 초대 회장 선거에서 강한모씨와 김준성
씨가 라이벌로 다투는 바람에 한인회 조직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었든 서상복씨가 어부지리로 선출된 비화가 있다. 서상복씨는 대한중석 뉴욕지사 대표로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또 남궁 총영사와 유엔 대표부 임병직 대사와 같은 정부관리와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재정후원을 바라면서 초대회장으로 추대 되었다는 비화도 있다.

뉴욕 지방한인학생회는 100여명의 회원을 확보했기 때문에 막강한 투표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한인회 회장선거에서 학생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필요했다. 196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으로 한국인 이민이사회는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으며 뉴욕의 한인인구는 수 십배로 증가했다. 따라서 뉴욕한인회는 좀더 활성화되었으며 한인학생회는 각대학 별로 조직 분화되어 각대학별로 외국인학생들과 경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뉴욕한인회는 1921년 한국유학생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나 일본제국의 억압정책으로 한국인을 정채성을 잃고 일본국적을 강요당한 것은 일본식민지 역사에 잘 기록되어 있다.(컬럼비아 대학 졸업생 한국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씨의 ‘회고록’ 참조)

미국의 한인사회 역사를 쓸 때 반드시 기억해 둘 것은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이민자 102명이 미국 상선 게이릭호로 호놀룰루에 도착하기 이전에 미국에는 한인 유학생과 인삼 장사와 기타 상인등 100여명이 정착해 있었으며, 1905년에는 1,000명이 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한인사회의 역사를 쓰는 학자들은 1882년 민영익 공사를 대표로 한미수교를 위해 한국정부 사절단 11명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수행원중 윤길준, 서광범, 변수 등 4-5명이 미국에 남아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구 한말 즉 1903년 이전에 100여명의 상인, 주로 인삼판매 상과 유학생이 정착했다고 조종무씨는 기록했다.(조종무 저 ‘아메리카 대륙의 한인 풍운아들’ (상,하권) 1987년 조선일보사 발행 참조).

좀더 정확한 한인사회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1882년 한미수교로 부터 시작하고 또 우리 한인사회의 발전사를 영어로 출판해서 우리 후세들이 읽고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한국인 선조들의 역사를 정확히 쓰는 것은 우리 후세들이 볼 때 그들의 선조들은 무엇을 어떻게 미국사회에 공헌했는지 알고 싶으며 또 미국의 인종차별 대우를 어떻게 극복하고 미국의 이민생활을 해결했는지 우리들의 지혜를 알고 싶어 한다.

한미수교 150주년인 2032년에는 한미외교 150년 역사는 물론 미국의 한인역사도 우리 한국인의 후세들이 집필하여 미국사회에 널리 보급될 것이 확실하다. 그들에게 정확한 역사자료와 많은 인사들의 회고록을 남겨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따라서 우리도 미국의 한인 역사 박물관 설립을 한번 꿈 꿔 보는 것도 바람직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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