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소의 해, 소를 닮은 사람

2009-01-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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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이 짜화, 마른 따이 운더화(진 땅에 장화, 마른 땅에 운동화)…. 워쓰 짱깨쓰…”

아마도 60, 70년대를 한국에서 보내신 독자들은 어린 시절 친구와 놀다가 “너 중국말 할 줄 알어? 못하지? 난 할 줄 안다”며 말도 안 되는 중국어를 혀를 굴려가며 했던 경험들이 한두 번 쯤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밀어닥친 80년 대 중국 무협영화 열풍. 서부활극과는 달리 손발만을 기묘하게 사용하여 악당을 해치우는 쿵푸 무협영화는 청소년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끌게 됩니다. 어릴 때 악당의 손에 부모를 잃어버리고, 은인에 의해 겨우 목숨을 건진 주인공이 좋은 스승을 만나 무술을 연마하고, 성장한 후 우여곡절 끝에 악당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는 뻔한 내용이었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매력이 있었던 기억이 제게도 있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유치한 영화들이지만, 아마도 어려웠던 시절, 억눌려 있던 감정들을 권선징악, 인과응보라는 명분으로 응어리를 풀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해소하려 했던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소룡의 ‘정무문’ 시리즈를 시작으로, ‘소림사’ 시리즈를 거쳐, 성룡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취권’이라는 영화에 이르렀을 때, 그 신드롬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때까지 항상 멋지고, 잘생긴 주인공이 심각한 얼굴로 악당을 해치우던 것과는 달리 다소 모자란 듯하고, 엉뚱하지만, 극히 인간적인 주인공, 성룡이 실컷 얻어맞다가 술을 한잔 들이키고는 비틀거리면서 악당들을 조롱하며 물리칠 때, 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성룡은 이 영화를 통해 일약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으며, 그 후 특유의 코믹 액션을 바탕으로 할리웃에 진출하여 지금은 세계적인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성룡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뜨기 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노라”고 발표했습니다. 20억 중국위안, 달러로 환산하면 무려 3억달러에 이르는 돈입니다.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부 결정의 배경을 밝힌 그는 취권 영화 속의 영웅을 뛰어 넘어, 힘들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영혼을 가진 실존하는 우리의 영웅이었습니다.

“25~30년 전쯤 홍콩의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린이 환자들이 당신을 보고 싶어한다’는 거였습니다. 돈 벌고 유명해지는 게 인생 목표였던 시절이었지만, 하도 집요하게 청을 해서 내키지 않았는데도 가게 되었습니다. 그후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얼굴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 뒤로 오늘은 이 병원, 내일은 저 병원을 찾게 됐습니다.”

그는 영화를 찍지 않는 시간에는 시간을 짜내 자선활동에 몰두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한때는 나도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이는 그런 사람이었으나 ‘기부’라는 숭고한 행위를 알게 됐고 거기서 평온과 위안을 얻게 됐다”는 그의 고백은 그의 기부 행위가 단순한 쇼맨십이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 진실임을 느끼게 합니다.

2009년은 소의 해입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은 ‘우덕송’이라는 수필을 통해 평생 멍에를 메고 주인을 위해 밭을 갈며 봉사하다가,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피와 고기를 내어주는 소의 덕성을 인도주의자, 심지어 성인에 비유하며 칭송하였습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 필사적으로 기부한다”는 성룡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보며 그가 소의 해인 올 해, 소를 가장 많이 닮은 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자장면 배달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고, 한국 여학생을 첫사랑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근한 그. 그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주먹코가 앞으로는 더욱 사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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