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잠이 은혜라고?

2009-01-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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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면 실컷 잔 것일까? 밀린 잠을 자본다고 어제는 초저녁부터 침대에 누웠는데 아무리 자고 깨도 여전히 캄캄한 밤이다. 새벽예배 시간도 아직 멀었고 다시 자자니 더 이상은 말똥말똥… 이것도 고민이다.

다음 주말에 있을 멕시코 교도소 1일 선교에는 7~8개 교회 교인들이 연합하여 한 팀을 이루게 된다. 이 날을 앞두고 나는 가능하면 그 교회들을 모두 차례로 방문하여 참가할 분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 각 교회별 예배시간에 맞추다 보니 주일 하루에 두세 번 예배를 드리는 날도 있다. 이런 날엔 맨 나중 설교시간에 영락없이 꾸벅꾸벅 졸게 마련이다. 은혜를 담는 내 그릇의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그러나?

환자를 볼 때도 간밤에 잠이 부족한 날은 힘이 든다. 물이 끓기 시작하는 온도를 비등점이라 한다는데 나로 말하자면 이럴 때 인내의 비등점이 현저히 떨어진다. “하하하, 네네, 그렇지요…” 하고 너그러이 들어주던 환자들의 반복되는 질문이나 마음씨 좋은 수다쟁이 환자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때로는 중간까지만 듣는다. “자자, 입 크게 벌리시고 아- 하세요!”
지난겨울, 중국에 선교를 갔을 때이다. 도착하자마자 종일 현지인을 진료하고 난 뒤에 숙소로 정해진 어느 형제의 집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공안원의 눈을 피하느라 종일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그 집에 들어서자 온몸에 피로가 몰려오며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형제가 내게 말했다. “김 사장님(신분을 감추어야 하니까 호칭이 달라진다)! 여기 좀 누우십시오.” 안내된 손바닥만 한 방으로 들어서는데 방바닥이 냉골이다. 작은 골방에서 7명의 남자가 같이 자는데 포개진 인절미가 무엇인지 그날 알았다.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고 바닥은 차고, 앉아서 잘 수도 없고…. 함께 가신 ‘이 사장님’은 코까지 골며 잘도 자는데, 정말 딱 5분만 자도 좋으니 제대로 누워보고 싶었다. 잠도 은혜였다.
몇 해 전에는 러시아에서 야간열차를 타게 되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간 단기선교 길이라 침대칸을 샀는데 러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낭만의 기차여행은 역시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지저분하고 협소한 침대칸 문을 열자 양쪽 벽에 각각 3개의 좁디좁은 간이침대가 위태롭게 층층이 놓여 있었고 초로의 사내들 네댓 명이 이미 아래 칸을 차지한 채 술 냄새를 풍기며 곯아떨어져 자고 있었다.

우리 식구가 한 칸에 다 탈 수만 있어도 좋겠는데 그렇다고 비어 있는 자리에 어린 딸과 아들아이만 남겨놓고 또 다른 빈 칸을 찾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안 떨어지겠다는 아이들을 달래어 꼭대기 침대에 따로따로 한 명씩 눕게 하고 아내와 나는 그 두 칸 중간쯤 복도에서 보초 겸, 밤을 새었다.

연결 칸 사이로 내다보니 덜커덩 덜커덩 쇳소리를 내며 기차는 황량한 시베리아 들판을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캄캄한 밤, 나는 이 식솔들을 끌고 어디로 가나? 어느덧 멀리서 새벽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꼬박 서서 지샌 밤, 내 힘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기도하게 하신, 그 잠 못 잔 밤이 실은 주님과 끝없이 대화를 나눈 은혜의 밤이었다.

잠도, 밤도 은혜다.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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