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9년의 능력

2009-01-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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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고 사는 현대사회에서 장애인들의 능력은 흔히 무시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능력은 경제원리에 의한 생산능력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능력은 언제나 열등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 세상 살 때의 논리로 말한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어느 정도 맞는다’고 하는 것은 장애인의 능력이 일반인들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정한 기준이라는 게 가진 자들, 소위 말하는 정상인들의 기준을 따른 것이어서 정상인들이 잘 할 수 있는 기준으로만 평가된다. 정상인들이 잘 할 수 없는 분야의 기준은 아예 측정 범주에 넣지도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눈을 뜨고 피아노를 연주하라고 한다면 정상인이 더 잘하겠지만 눈을 감고 피아노를 연주하라고 한다면 시각장애인들이 더 잘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프로의 세계로 가면 눈을 감는 것이나 뜨는 것에 관계없이 장애가 아닌 실력에서만 차이가 날 것이다.

우리 발달장애인을 위한 토요학교에 나오는 장애아들을 볼 때마다 경이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냥 보면 말도 못하고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아이들이고 이 세상의 경제논리로 말하면 생산성 없는 친구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성품으로 따지고 보면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신비한 능력이 있다. 우리가 이 세상만 살고 죽는 것이 끝이라면 소위 말하는 정상인들이 승리자이지만 영원한 하늘나라가 승부처라면 장애인들이 하늘나라에서는 훨씬 큰 자들일 수가 있다. 어떤 아이들은 피아노에 앉아 “도도도도, 미미미미”하고 똑같은 음을 두드리며 열 시간도 넘게 연주할 수 있다. 말리지만 않는다면 한 달간이라도 계속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베토벤이 만든 곡만이 음악인가? 그들에겐 그것이 곡이고 음악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런 악보를 가지고 몇 시간도 연주할 수가 없다.


발달장애아들은 갑작스런 변화를 싫어한다. 보통사람 기준에서 융통성과 기동성이 떨어진다고 말하겠지만 하늘나라의 성품으로 따지면 탁월한 성품이 아닐 수 없다. 매주일 장애 자녀와 함께 교회에 가는 부모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번은 주일날 급한 일이 있어서 부득불 교회를 빠지게 되었다. 교회를 갈 시간에 자동차가 익숙하지 않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오늘은 교회에 갈 수가 없다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때부터 하루 종일 난동을 부렸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 때문이라도 교회를 빠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말 우리에게 하루라도 교회를 가지 않으면 다른 것을 다 뒤엎어버릴 만한 믿음이 있는가?

중국에 갈 때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농아교회가 있다. 그들은 그저 찻집이라고 불리는 시장마당에서 예배를 드린다. 옆 어물전에서는 생선 사라고 외치는 아줌마의 큰 외침과 앞 다방에서 쾅쾅하고 울려 펴지는 유행가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몸동작을 다해 진지하게 예배를 드리는 농아들의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예배에 집중할 수 없는 장애를 느꼈다.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예배에 저렇게 집중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하고 자문해 보았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이 땅에 살 동안의 ‘약삭빠른 줄서기’라는 이치로 따지는 것이어서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동안 하나님 나라의 줄서기로부터는 한참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사는 것 같다.

참된 능력이란 ‘하나님의 성품을 얼마나 잘 나타내는가’에 달렸음을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들에게 하나님 앞에 설 때 그렇게 평가하신다고 성경에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을 명심하며 2009년을 산다면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큰 능력을 체험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

김 홍 덕
(목사·조이장애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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