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단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사세요

2009-01-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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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러가 던지는 회심의 카드 ‘리스-매입 옵션’

일단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그 때 구입해도 됩니다. 지은 집은 많은데, 팔리지는 않고... 지독한 주택 시장 불황에 주택 건설업체들이 비장의 카드를 내걸었다. 선임대 후매입 옵션(Rent-to-own options). 미리 매입할 필요 없이 일단 렌트로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매입하는 방식이다. 바이어로서는 여간 솔깃한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주택 매입 방식에 비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로운 점이 많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집이 매입하기에 적합한지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고 매입 자금을 당장에 마련할 필요 없이 천천히 준비하면 된다. 조만간 주택 가격이 반등하면 투자 측면에서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유리한 점이 많은데 판매자가 굳이 이런 과분한 호의를 베푸는 이유는 집이 워낙 팔리기 않기 때문. 그렇게라도 팔지 않으면 안될 만큼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이다.


당장 다운 부족해도 집 살 기회 잡아 좋고
매달 내는 렌트가 매입자금으로 간주돼 더 인기
셀러도 안 팔려 묵히느니 렌트 들어와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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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후 매입 옵션은 주택 불황이 깊어지면서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황을 거부하는 럭서리 하우스 마켓 뉴욕에서도 요즘은 이 옵션이 드물지 않다.

전국 수위를 다투는 럭서리 주택 건설업체인 톨 브라더스는 뉴욕의 럭서리 콘도미니엄을 현재 리스-매입 옵션으로 판매중이다. 노스사이드 피어스 타워의 럭서리 콘도는 2년전 첫 분양이 시작됐을 때 180채 중 20%가 첫 2달 만에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가 높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택 불황이 덮치면서 뜨거웠던 열기는 사라지고 현재 29층짜리 유리 빌딩의 3분의 1이 아직 주인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판매가 얼어붙자 자존심 센 톨 브라더스도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리스-매입 옵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리스-매입 옵션은 요즘 집을 팔지 못해 고전하는 주택 건설 업체나 개인 셀러 사이에 인기가 높다. 특히 네바다나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차압이 많은 지역에서는 관심이 뜨겁다.

집을 팔지 못해 애를 태우는 개인 셀러들도 리스 매입 옵션을 제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iRentToOwn.com은 일 년 전에 개설됐는데 현재 접속빈도가 440만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구가한다.

브로커들도 팔리지 않는 리스팅에 리스 매입 옵션을 끼워 넣는 경우가 늘고 있다. 뉴욕 맨해턴 일원의 아파트 빌딩들도 리스 매입 옵션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흔해졌다. 부동산 전단지나 판촉물에는 하우징 ‘테스트 드라이브’를 권유하는 광고가 흔한데 판매 가격과 렌트가 같이 적혀 있다.

리스-매입 옵션은 제공하는 셀러에 따라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은 납부한 렌트가 쌓여 나중에 매입하기로 정했을 때 매입자금이나 클로징 코스트를 낮추는데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

일단 렌트로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나중에 매입하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리스 기간이 종료된 시점에서 그냥 나가면 그만이다.


리스 매입 옵션은 주택 시장이 지금보다 더 나빴던 80년대 후반 및 90년 대 초에도 등장했었다. 그 때는 과잉 재고가 거의 7년치에 이를 정도로 지금(8개월)보다 더했다.

당시 리스 매입 옵션 거래를 다뤄봤던 맨해턴의 한 부동산 업자는 렌트 후 실제 매입으로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렌트에서 매입으로 전환하는 비율은 5%선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는데 리스 매입 옵션을 선택한 사람 중 대부분은 매입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지금은 바이어나 셀러 양측에 모두 매력적이어서 리스에서 매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셀러로서는 판매만을 고집했더라면 부동산을 그냥 잠재우고 있어야할 터이지만 렌트라도 나가니 현금이 돌게 돼 좋다. 바이어로서도 이 조건이 아니면 매입은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딱 들어맞는다. 다운할 현금이 당장 부족하거나 크레딧이 충분치 못하다면 요즘처럼 융자가 어려운 때에는 주택 매입은 마음뿐 실제로는 어렵다.

영국에서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40세의 테크놀로지 스페셜리스트 사이먼 홀. 그에게 리스 매입 옵션은 크레딧을 쌓고 종국에는 내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영국에서야 크레딧이 아주 좋지만 이곳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 집을 당장 매입할 수는 없었다. 리스 매입 옵션을 통해 렌탈 기록과 유틸리티 빌 기록을 쌓아갈 것이다.

그는 브루클린의 브릿지뷰 타워 콘도미니엄의 1,200스퀘어피트 2베드룸을 일년 리스 옵션으로 계약했는데 리스 만료 전에 매입하기로 결정하면 월 4,000달러씩 내는 렌트(관리비는 빼고)는 매입가(현 판매가 98만달러)로 취급된다.

같은 곳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1베드룸 콘도를 2년 리스 매입 옵션으로 계약한 마이클 맨쿠소는 다운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끌린 케이스. 그는 “지불한 렌트의 대부분이 매입 자금으로 환불받으니 얼마나 좋은가. 2년 뒤에 매입으로 전환하면 2년간 공짜로 렌트 산 셈이 된다”고 말했다. 월 3,000달러 렌트중 83%가 매입비용으로 간주되니 55만달러의 아파트를 실제로는 49만달러로 사는 셈이다.

한 부동산 중개인도 “예전에는 이런 방식은 생각도 안했지만 팔리지 않는 콘도에 이런 조건을 제시하니 반응이 좋다”며 판매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대신 매달 소득이 들어오니 그나마 낫다고 말했다.

개인 셀러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다. 부동산 경기가 한창 뜨거울 때 집을 7채나 투자했다가 궁지에 몰린 한 개인 투자자는 “더러 바이어가 나타나기도 했으나 모기지 융자가 나오지 않아 딜이 깨지곤 했다”며 “리스 매입 옵션을 제공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어에게 저축할 시간을 줌으로써 바이어는 융자 유자격자가 되어 자신의 집을 사갈 것이라는 기대였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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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판매가 어려워지자 리스 후 매입 옵션을 내거는 주택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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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매입 옵션은 당장 융자가 나오지 않는 바이어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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