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분히 듣는 사람

2009-01-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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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최고 보좌관이었던 랠리 윌커슨은 부시 대통령을 ‘새라 페일린 형’ 지도자라고 평했다(데일리 뉴스). 그 말은 주의력을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닥치면 그 때 생각하자’는 것으로 속단속결(速斷速決)주의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테러 방지 자문관이었던 리처드 클러크는 국가안전보장 위원들에게 충고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메모를 드릴 때는 되도록 짧은 문장을 만드시오. 그분은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메모까지도 끝까지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읽는 문제뿐이 아니라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말을 차분하게 경청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의 말을 잘라 먹는 사람, 타이밍 맞지 않게 제 말을 불쑥 꺼내는 사람, 남이 말 할 때 두리번거리는 사람 등은 예의를 넘어 말 하는 사람을 몹시 불쾌하게 만든다. 재클린 오나시스는 뉴욕에서 살다가 64세에 암으로 죽었다. 그 당시 각 신문이 그녀의 특집을 만들었는데 모두의 공통점은 ‘사랑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겸손, 따뜻함, 품위 등 좋은 점이 많이 지적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재클린의 인격을 높인 것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습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버드의 가드너 교수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중간 화해자로서의 인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의 세계를 관찰 연구하였는데 네 살배기 아이의 세계에도 지도적 역할을 하는 아이가 뚜렷이 드러난다고 한다. 주먹이 센 아이나 캔디를 자주 분배하는 아이가 아니라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주거나 우는 아이를 위로해 주거나 싸움을 말리는 등 중간 화해자의 역할을 할 줄 아는 아이가 그룹의 리더가 된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 아니고 남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여유 있는 마음이다. 그런 사람은 대화에서도 듣는 역할을 잘 한다.

설교를 해보면 청중의 표정, 태도, 눈빛으로 저 사람이 잘 듣고 있는지, 건성으로 듣고 있는지, 설교의 반응이 좋은지 별로인지, 메시지의 초점을 깨닫고 있는지 겉핥기로 고개만 끄덕이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사람에게서 설교자는 격려를 받고, 뜻을 깨달으며 수긍하는 사람에게서 설교자는 큰 보람을 느끼며, 무엇인가 결심을 일으키는 것 같은 반응을 볼 때 설교자의 행복은 최고에 이른다. 그 모든 성과들의 기초는 역시 청중의 듣는 태도에 있다.

한국인이 지닌 본래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하여 옛 시조 한 수를 감상하자. “오동에 듣는 빗발 무심히 듣건마는/ 시름이 하니 잎잎이 수성(愁聲)이로다/ 이후야 잎 넓은 나무를 심글 줄이 있으랴” 오동잎에 빗발 퉁기는 울림이 걱정 많은 시인의 수심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나뭇잎이 오동잎처럼 넓은 것은 아니므로 다음번에는 작은 잎사귀의 나무를 심어 빗줄기의 애가(哀歌)를 바꾸어 보겠다는 여유 있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여유가 본래 한국인이 지니는 멋이다. 요즘은 한국인도 본래의 여유를 잃고 많이 조급해진 것 같다.

대만이 낳은 신학자 송천성 박사는 중국, 일본, 한국의 고전시를 비교 연구하고 공통적인 정서를 ‘울림’으로 보았다. 울림은 산울림이 나타내듯 여유와 은은함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가는 끈질김도 포함된다. 한국의 퉁소, 가야금, 장구 등은 모두 울림을 주로 한 악기들이다. 이 악기들이 본음도 중요하지만 여음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울림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하기야 서양 음악인으로서도 바흐 같은 사람은 “음과 음 사이에 대한 처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발언함으로써 울림의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음과 음을 연결하는 울림이란 인간관계로 말하면 정(情)이요, 흥(興)이다. 그것은 여유 있는 감정이고 낙관적인 인생관이다.

요즘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정도 흥도 여유도 낙관적인 철학도 찾아볼 길이 없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끼리끼리 병, 족벌(族閥)주의, 배타심 등 결국 욕심이 낳은 산물들이다. 주장에 앞서 경청해야 한다. 강팍(剛愎)한 자가 이기는 것 같아도 예수의 말씀처럼 온유한 자가 복을 받는다. 대화 할 때 잘 듣는 자가 되고, 부딪칠 때 유연한 자세를 취하며, 김이 솟을 때 스스로에게 잠시 미소를 보내는 여유가 한국인의 본래 멋이다.
기왕 시작했으니 시조 한 수만 더 소개한다. “잘 새는 날아들고 새달이 돋아온다/ 외나무다리를 홀로 가는 저 선사야/ 네 절이 얼마나 하관대 원종성(遠鐘聲)이 들리나니” 명작이다. 깊은 산속, 땅거미가 내리고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의 지저귐, 먼 종소리와 개울의 합창, 그리고 초라한 외나무다리. 넉넉한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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