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홈런정신으로 새해를

2009-01-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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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야구는 뉴욕 주 ‘쿠퍼스 타운’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19세기 무렵 농민들의 게임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풋볼(Football 미식축구)과 함께 미국의 양대 국기(國技)로 인기를 차지하고 있지만, 축구나 농구처럼 세계적인 호응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유럽이나 중국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며 ‘양키의 놀음’이라 하여 유럽인들은 야구를 은근히 경멸하기도 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카리브해 연안과 멕시코 등지에서는 인기가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여겨진다.

야구는 미국의 개척정신(Frontier Spirit)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축구나 농구, 그리고 풋볼 등의 스포츠 게임은 일반적으로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공이 그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날 것 같으면 벌점을 먹거나 상대방에게 공격권을 양보해야 한다. 그런데 야구에서는 공이 한계선을 넘어갔을 때 이를 ‘홈런’이라 하여 특별 혜택을 부여해 홈런을 친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주자들도 무제한 뛰어 홈인을 한다. 이때 하늘 높이 치솟아 펜스를 넘어가는 백구를 쳐다보면서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게 된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장쾌한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프런티어 정신’인 것이다. 테두리를 뛰어 넘는 진취성, 그것을 위해 뱉(Bat)을 휘두르는 투지, 그렇게 치솟은 백구가 그려내는 포물선을 창공에서 바라다보는 해방감과 통쾌감이라니! 좁은 섬나라에 갇혀 사는 일본인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심리를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들어온 지는 100년이 좀 넘는다. 1905년에 질레트 (Gillette)라는 미국인이 황성기독청년회 회원들에게 이 경기를 처음으로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물론 정식으로 야구의 규칙 전부와 함께 가르친 것은 아니고 간단하게 여흥삼아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했던 것이고, 그 당시에는 야구를 타구 또는 격구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다가 야구가 본격적인 스포츠 종목으로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09년 여름에 동경유학생들이 여름방학 때 모국에 돌아와 서양 선교사들과 대전을 하면서였다고 한다.

1909년이면 이미 일본이 통감부정치를 할 무렵이었다. 바로 그 이듬해 여름에 한일합방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운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던 때였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울하고 비통하고 암담했던 것임은 족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필경 야구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떤 해방감, 장쾌감, 그리고 비약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바야흐로 기축년인 2009년, 우리 모두는 비장한 각오와 마음가짐으로 다가온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08년이야 말로 우리 생애에 전무후무한 어려운 한 해였다. 아무리 어
렵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외면하거나 부정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어렵다고 해서 속수무책으로 맥 놓고 앉아서 개미 쳇바퀴 돌듯 떠밀려 피동적으로 살아갈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인생이란 어떤 생각과 마음의 자세로 사느냐에 따라 천양지차가 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해가 되면 으레 습관적으로 잠시 뒤를 돌아다보며 앞으로에 대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같은 결심은 며칠 안 가 곧 ‘작심삼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금년은 특히 비장한 각오와 결단이 요구되는 해이다.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과 테러 사건, 무엇보다도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 불황은 온 세계 사람들의 목을 조여 지금껏 악몽을 꾸는 듯 사투를 계속하는 중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다함께 ‘홈런 정신’으로 지난 한 해 겪었던 고통을 말끔히 씻어 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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