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티켓은 문화수준의 척도

2009-01-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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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언론인)

사회환경이 복잡하고 문명화 될수록 에티켓이 필요하다. 생활이 단조롭고 대인관계가 단순한 농경사회에서는 기본적인 인사나 예절로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걸리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상대방을 의식하며 조심을 해야 한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낯모르는 사람들과 직, 간접적으로 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게 현대인의 도시생활이다. 지하철을 타려면 먼저 와 있는 사람들 뒤에 서야지 바쁘다고 앞줄에 나서면 바로 새치기가 되어 많은 눈총을 받게 된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식당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주사(酒邪)를 부리면 다른 손님들의 밥맛을 앗아가기 마련이다.

며칠 전, 대로변에서 택시를 타려는데 두 명의 아가씨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50대 아주머니가 우리 앞으로 나서더니 갓 도착한 차를 서슴없이 타고 달아나는 게 아닌가. 저러니 어른들이 존경은커녕 무식하고 교양이 없다고 조롱을 받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교양과 에티켓은 동전의 양면이기에.


지하철 안에서 껌을 짹짹 씹고 있던 한 여인이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껌 씹는 소리도 듣기 민망한데, 긴 하품이 끝날 때까지 크게 벌려진 입을 손으로 가리려는 시늉마저 없는 걸 지켜보는 심정은 유쾌할 수가 없었다. 거리나 지하철에서 젊은 남녀가 맞붙어 지나친 애정 표현을 하는 것도 에티켓을 벗어나는 꼴불견에 속한다. 교양과 에티켓이란 게 뭐 별 건가? 그저 상식으로 생각해서 조금 양보하고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쓰면 되는 일이다. 문명인이라고 자처하는 서구인은 이런 점에서 분명 앞서고 있다.

조금만 몸을 스쳐도 어김없이 “I am sorry”가 따라붙고, 남의 앞을 지나갈 땐 반드시 “Excuse me”란 겸양의 신호를 보낸다. 작년 겨울 아침 산책을 하던 중 겪은 일이다. 건널목에 이르렀을 때 승용차를 만났다. 분명 나보다 먼저 도착했는데 그 차는 지나가질 않고 멈춰 섰다. 내가 지나가라고 수신호를 했는데도 그 안의 젊은 여인은 나더러 먼저 건너가라고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한 순간의 일이지만 “Thank you”하는 말이 절로 새어나오면서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너무 단순한 작은 행동 하나가 그 나라 사람을 평가하고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하게 된다.

요즘 한국에서는 20대 태반이 백수라고 해서 ‘이태백’, 대학을 나온 후에도 부모의 그늘에서 산다고 해서 ‘캥거루족’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 터에 ‘88만원 세대’ 란 말이 하나 더 늘었다. 20대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을 계산해 보면 월 88만 원이 된다고 해서 나온 신조어라고 한다.
이처럼 좁은 취업문을 들어서는데 필수 과정이 면접시험이다. 기업체의 인사 담당자들에게 “지원자의 면접 에티켓이 당락여부에 영향을 미치는가?”라고 설문을 한 결과 그렇다는 답변이 99%였다. 에티켓은 사회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에 업무능력보다 성격·인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는 어찌 면접시험에만 국한될 문제이던가. 사람의 첫 인상이 3초 만에 결정된다고 하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이 에티켓과 관련이 있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일, 인사하는 태도와 표정, 옷차림과 대화하는 자세, 모두가 에티켓에 속한다. 21세기,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국민 한 사람 함 사람이 에티켓을 갖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에티켓도 경쟁력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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