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바지 150년

2009-01-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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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1848년 캘리포니아! ‘심 봤다’가 아니라 ‘노다지 봤다’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서부 개척의 강풍이 몰아친 것이다.미 전역에서 풍운아들이 금덩어리에 끌려 캘리포니아로 모여들었다. 광산 노동자를 뒤따라 이태리 출신 재봉사가 옷감과 재봉틀을 들쳐 메고 뒤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대인이 저울과 주판을 가죽가방에 넣고 광산촌에 합류했다.당시 금광 노동자에게 큰 고민거리의 하나는 작업복이었다. 일상복 면제품 옷은 험한 광산 작업에 너무나 열악하였다.

어느 날, 작업복을 구하려고 광산촌에 나온 한 광부는 길거리에서 어깨에 ‘천막지’와 ‘돛감’을 매고 사라고 호객하는 행상을 보았다. 광부 사나이는 행상을 뒤따르며 생각에 잠겼다. ‘저 천막지로 바지를 지어 입는다면 오래 가겠지’ 이것이 1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청바지의 원조이다.
청바지는 질기고 튼튼해서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절대가치를 지니고 태어났다. 그런데 지금도 청바지를 선택할 때 질기고 튼튼하다는 실용성이 고려될까?


물론 소수 소비자에 한해서는 있겠지만 그래도 답은 아니다. 청바지로 하여금 150년이라는 불굴의 유행과 소비 욕구를 줄기차게 충족시켜준 속성은 질기고 튼튼함이 아니라 청바지에 잠재하고 있는 강한 ‘빈티지(Vintage)’적 속성이다.빈티지는 다소 허름하고 낡아보이는 고품을 의미하나 결코 고전이나 복고는 아니다. 빈티지는 영국 속어로서 빈티지 연장선에서 앤틱( Antique)을 연상한다는 것은 매우 세련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80년대로 기억한다. 미 전역의 세탁소에서 낡은 청바지만을 싹쓸이 해 가던 기업이 있었다. 싹쓸이 한 중고 청바지는 곧바로 일본에 수출되어 세탁소에서 1달러 하던 청바지가 100달러에도 불티났다. 이 회사는 포춘지가 선정한 1990년대 가장 빠르게 성장한 100대 기업의 하나다. 바로 ‘그로버스’이다.멀쩡한 새 청바지를 사다가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대던 때는 옛 말! 청바지 브랜드마다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빈티지 청바지를 쏟아내고 있다. 제대로 된 빈티지 청바지가 생기려면 최소한 5~6년 걸려야 한다. 그런데 몇 초에 한 벌씩 양산하고 있다.

새 것을 다소, 아니면 아주 허름하고 낡아 보이도록 하려는, 이름하여 ‘빈티지 문화는 청바지에 그치지 않고 인간들의 생활공간을 깊숙히 파고들고 있다. 신품과 최첨단에 겁도 없이 미쳐 돌아간 잔인한 인간들! 가슴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머리만 굴리며 살아온 기계의 노예들! 가슴의 따뜻함을 이제 겨우 느끼기 시작한 사람, 사람들! 오래 되고 허름해 보이는 친구, 의상, 가구, 사회, 국가... 등등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원류이고 가슴 속에서 형성된다.청바지 150년이 우리에게 주는 철학, 경제적 암시는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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