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편이 모르는 비밀

2009-0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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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어느 겨울날 밤, 나는 한 남자를 주춤거리며 미행하고 있다.
남이 언뜻 이 장면을 보았으면 나는 영락없이 어떤 남자를 쫓아가는 수상한 여자의 모습이다. 내가 쫓는 남자는 추운 겨울날 허름하고 낡은 얇은 옷가지 두가지를 달랑 겹쳐있고 그라니 스미스 사과 하나를 맛있게 아껴 먹듯 먹으면서 가고 있는 스페니쉬 성인 노동자다.

내가 그를 쫓아가게 된것은 그의 눈에서 말할수없는 선함을 느끼게 한 작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때 남편과 곰국을 맛있게 양념해서 먹을 계산을 하고는 집에 가기전에 상담 케이스 때문에 약속장소로 가려다 맞은편에 있는 그로서리에 가서 파 세단을 급하게 집어들고 계산대에 섰
다. 어떤사람이 계산 중에 있었고 그는 사과 하나를 들고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내가 계산대 앞으로 가까이 가자 가벼운 미소로 내게 먼저 하란다. 나는 “당신이 먼저 있었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미소로 그에게 먼저 권했다.


어디서 막노동을 하고 왔는지 힘이 하나도 없는 선량한 눈을 가진 그가 1달러25전을 내고 소중한 듯 두 손으로 사과를 받쳐 먹고있는 그 모습에 나는 무조건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도저히 내 갈길로 가지지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따라가는 그 짧은 동안에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그라니 스미스 사과 한 봉다리를 사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참 어이가 없었다.
그를 쫓아 으슥한 길을 따라 가면서 “저, 잠깐 기다리겠어요? 제가 사과를 좀 사드리고 싶은데 괜찮다면 금방 사가지고 나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겠어요?”하고 싶은데 동시에 “저사람이 놀라거나 의아해 하면… 아니 자존심이라도 상하게 한다면…”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동안 가슴이 콩당콩당, 목젖까지 침이 꿀꺽하던 그 용기가 그만 사그라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돌아서는 나를 보며 나는 그만 울고 싶었다. ‘내가 그러면 그렇지’라며.

그리고는 내내 그에 대한 이름모를 연민이 내 마음에 그득하게 무거움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 사람은 도대체 겁이 없이 밤에 팰리사이드팍 골목길에서 왜 스페니쉬 남자 뒤를 쫓아가!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는 사람이네”라며 어이없는 웃음을 웃으며 내게 핀잔을 줄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웃에 대한 이런 가벼운 사랑과 연민의 마음들을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누며 살 수있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마음에 “뮈 이런 여자가 다있어”라는 반응이 있을까 두려워 그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는 그런 세상 말이다.

“그래!내가 이번에는 용기가 없어 못했지만 오늘 아침 내게 ‘하이 마마’하면서 뻐드렁니를 드러내 놓고 늘 따뜻하게 웃으며 기름을 넣어주는 그에게 따스한 겨울을 나라고 목도리라도 선물해야 겠다.” 그리고 내가 배고파 왕만두 세개를 사서 차안에서 먹으며 기름을 넣고 있는데 그것을 흘끗 쳐다보는, 얼굴이 까맣다 못해 빤질빤질한 자마이칸 흑인에게 “너 먹어볼래”했더니 허연 이를 온통 내보이며 침까지 꿀꺽하며 받아들고 너무 행복해 하던 그에게 따끈한 왕만두 한 보따리를 추운 겨울에 선물해야지… “그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 안할거야.”하며 남편 모르는 다른 남자들에게 선물할 것이 있는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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