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2008-12-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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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아우쉬비치 수용소는 절대절망의 장소로 지상의 지옥이었다. 그 속에서 함께 고난을 당했던 사람 중에 정신의학자요, 의미요법의 발견자인 빅터 프랭클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왜 똑같은 고난의 현장에 있지만 어떤 자는 죽고, 어떤 자는 살아남는가?”를 관찰했는데 “내 인생은 끝났다”고 소망을 끊어버린 자는 생명의 불씨가 점점 꺼져 결국은 죽지만, “신이 나와 함께 하고 나의 앞길을 인도해 준다”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은 자는 자기도 살고 절망가운데 있는 동료도 붙들어 주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인간의 삶에서 막다른 골목에 처했을 때 처신하는 방법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나타남을 말해주는 예화이다. 금융대란의 엄청난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인들의 우울한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떤 사람은 집 혹은 건물, 가게의 렌트비나 모기지를 못내 차압당하거나 당하기 일보 직전이고, 직장이 떨어져 당장 먹고 살 생계비가 없어 거리에 나앉아야 할 지경에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온전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죽겠다, 죽겠다 하다 정말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죽는 형이 있는 가 하면, 비록 힘들 지언 정, 어떻게든 참아내면서 죽을 힘을 다해 소생하는 형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고난 속의 절망이냐, 고난 속의 희망이냐의 차이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고난은 사실 그 안에 놀라운 희망의 씨앗이 심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크고 작은 시련과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넘길 때 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위기를 빠져나왔고 그러면서 더 큰 삶의 용기와 힘을 얻곤 하였다.

고비였기 때문에 실제로 죽었다거나 막다른 골목이어서 오도 가도 못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리 저리 해결하면서 혹은 피해가면서 지금까지 용케도 잘 살아왔다. 오히려 이런 위기가 더 기회가 됐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손등에 까만 구두약이 묻었어도 눈에는 희망이 반짝거리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남에게 진 빚 때문에 아버지가 투옥되어 구두를 닦으면서 어려운 생활을 영위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밤하늘에 박혀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별을 보며 탄식 대신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한다. 길 한 모퉁이에서 밤늦게 구두를 닦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년을 본 사람들은 그에게 “구두 닦는 일이 좋으냐?”고 물었다. 그 때마다 소년은 “그럼요, 저는 희망을 닦고 있는 걸요.”하고 대답했다. 이 소년이 훗날 ‘올리버 트위스트’로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 찰스 디킨스다.

부모와 세상에 대한 미움과 불평, 그리고 원망 보다는 오히려 고난 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도전정신을 가지고 어려운 현실을 극복, 마침내 성공에 이르게 된 좋은 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을 마음속에 심으면 위대한 힘을 발휘해 어떠한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 고난은 이렇게 역설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고난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용기를 갖게 되고 작으면 작을수록 오히려 삶의 자세가 더 흐트러지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 위기를 오히려 새로운 도전과 삶의 무기를 더 단단히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아무리 절망일지라도 위기를 기회로 삼고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어딘가에 빛과 소망이 있게 마련이다. 어둠이 깊어야 새벽도 쉬 온다는 말이 있다. 시커먼 어둠이 온 누리를 덮더라도 빛은 꺼지지 않는 한 가닥 희망이 되어 어둠이 짙은 새벽, 더 빛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짙은 먹구름도 끝내 하늘의 빛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고난을 괴로워하거나 피해가려고 하지 말자. 오히려 고난이 있음으로써 삶의 새로운 자세와 삶의 패턴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해이했던 생활과 마음의 자세를 동여매는 귀한 기회도 될 수 있다. 기축년 새해에는 우뚝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떠한 고난이 우리를 기다릴 지라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힘차게 살아가자. 희망만 불태우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어떠한 고난이라도 다 헤쳐 나갈 수 있다.

무자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흉흉한 한 해였다. 이제 한 해는 갔지만 앞으로 닥칠 새해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멀고 험한 길을 가자면 행장(行裝)을 단단히 차려 입어야 한다. 굳게 다진 새해맞이에서 희망은 솟아오른다. 어두움은 물러가고 이제 새 희망만 오라.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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