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 맞이

2008-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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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수필가)

또 한 해가 그냥 지나 갔구나!
해마다 “새해에는~”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면 늘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1월은 소망이 있다. ‘New year’ 말 그대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이다.1월1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정’(新正)이라고 불리우는 명절이다. 물론, 음력으로 따져서 구정(舊正)을 지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빨간 글씨로 당당하게 적혀있는 공식적인 공휴일이다.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친정 부모님은 신정은 새해 첫 날이라는데에 의미를 두고, 구정은 남들 다 지내니까 우리도… 하며 이중과세(二重過歲)를 지냈다.내가 어렸을 적에는 명절 때 마다 볕이 잘 드는 대청마루에 대가족이 모여 떡만두국 잔치를 벌였었다. 지금도 두터운 담요를 깔고 윷을 던지면서 떠들썩하던 광경이 떠오른다.아이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세배를 드리고는 저고리 섶에 매달은 복주머니에 두둑하게 차 가는 세뱃돈을 꺼내 세어보곤 했었다.


1월 15일은 ‘정월 대보름’이라고, 새해 들어 처음으로 보름달을 맞이하고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날이다.이날 저녁에는 호두, 잣, 밤, 은행등의 껍데기가 단단한 부럼을 까먹어서 부스럼을 예방하고 오곡밥과 나물을 하루에 아홉 번 먹고 나뭇짐을 아홉 번 한다.추수가 끝나고 추운 겨울 동안 따뜻한 아랫목에서 웅크리고 있거나 화투판이나 찾아 다니는 농촌의 일상에서 벗어나, 요즘 영양분의 보고(寶庫)라고 한창 뜨고있는 각종 씨앗과 비타민이 풍부한 나물, 잡곡밥 등으로 부족하기 쉬운 영양 섭취도 하고 땔감이 떨어지기 전에 겨울철 준비도 하자는 조상들의 지혜로운 발상이 아닐까?

저녁에는 횃불을 들고 달맞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거나 쥐불 놀이를 즐겼다.초등학교 5학년 땐가? 시골로 전학 갔을 때,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서 어스름한 저녁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휘황 찬란한 불놀이를 구경만 했었다.마른 나뭇가지를 주워다 모닥불을 피워 구운 감자와 콩을 입가를 시커멓게 물들이며 먹은 기억도 있다. 비록 짧은 동안이었지만 순박한 시골 인심과 자연을 벗 삼았던 그때의 추억들이 나의 삶 속에서 소중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쥐불놀이’는 불을 밝혀 쥐의 눈을 멀게 한다는 데서 유래된 놀이이다.깡통에 불을 담아서 휘 휘 돌리다가 밭으로 던져 곡식을 벤 그루터기가 까맣게 타게 되면 거름이 되어 밭의 흙이 윤택해져서 이듬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과학적,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뛰어난 지혜를 삶에 적용하면서 살아왔다.

2009 년은 기축년 소의 해이다. 부지런하고 참을성 많은 소처럼 우리도 어려운 경제대란을 근면 성실로 대처해 나가야겠다. 2008년에도 크고 작은 뉴스들이 신문 지상을 메웠다. 모두가 같이 기뻐하고 축하할 일도 많았지만, 기억 조차 하기 싫은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잃는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고,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가져 오는 법이라고 애써 위로해 본다. 지난 해를 거울 삼아 새해에는 보다 좋은 일들을 위해 정진해야겠다.

2009년을 맞이하며, 언제나처럼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기대 이상의 결실을 맺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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