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술가가 해낼 수 있는 능력

2008-12-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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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2차대전시 나치 점령이 오히려 조각상으로 지저분해진 파리 거리를 깨끗이 해주었다는 비아냥에도 루브르와 오르세이 박물관에는 지금도 잘 보전된 거성들의 예술작품이 가득하다. 그 중 하나가 루브르 데논관에 있는 데비드의 작품 ‘황제 제관식’ 그림이다.

성공이 약속된 예술가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 새로운 이념이 요구되는 격동의 시기에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인가. 앞으로 다가올 역사적 변동을 앞두고 애국주의와 영웅주의를 테마로 한 ‘호라투스 형제의 맹세’를 그린 프랑스 화가 데비드는 우리에게 그 해답을 준다.회화를 통해 시대를 앞질러 이상을 구현한 그의 천재적 예술 능력을 파리에 선보였을 즈음, 성
공한 또 한 명의 천재군인 나폴레옹을 만나 정치와 일체를 이룬 예술활동을 벌여 그에게 성공적 혁명의 길을 깔아주었다.


애국적인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혁명정부에서 일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 이유가 되어 잠시 옥살이를 치른 후 나폴레옹이 제위에 오르자 제국을 위해 화필을 들어 황제의 수석 궁중화가가 되면서 파리의 제일 미술가가 되었다.교수의 지도로 견학온 학생을 비롯해 유달리 많은 관객의 시선을 받는 그림 ‘황제의 제관식’은 황제의 주문을 받아 3년에 걸쳐 끝낸 작품으로 완성을 보았을 때는 어용화가로 비난받기도 했다. 이 그림은 작품이기 전에 당시 정치무대의 주역인물들의 초상화 전집이라 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더 있다. 발코니에서 황제가 된 아들을 내려다 보는 희미한 황모후의 모습(참석 안했었기에 Out of focus로 처리), 형제 자매들의 단합된 자세, 무표정한 교황과 대조되는 참모들의 활기찬 모습들 중 나폴레옹은 그 으뜸이다.

28세에 프랑스 혁명을 지휘하고 35세에 황제관을 직접 쓴 시골 청년의 우아한 모습은 정복을 위해 태어난 듯 보이질 않는다. 같은 이념과 열정을 갖고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천재가 격동기에 호응해서 한 사람은 힘으로 혁명을 지휘하고 예술가는 회화로 그 혁명을 찬양했다. 관객들이 발길을 오래 멈추고 주시하는 이유이다.황제관을 벗고나서 한 사람은 정치적 다툼으로 괴로움을 당하면서 역사의 배신자가 되어 귀양지에서, 또 한 사람은 망명지에서 끝나지 않은 자신들의 운명을 마감해야 했다.

역시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긴 것이다.선조 인류가 남긴 문명 유물이나 고귀한 유산들이 있는 곳을 돌아볼 때마다 단체로 온 일본 학생들을 만나보게 되는데 그 때마다 필자는 부러움을 느낀다. 우리 한인들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큰 열정을 가졌으면서도 그런 곳에서 우리네 애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자식이 사회의식이 생길 때쯤 창조성 계발을 위해 인류가 남긴 유산을 찾아보고 인류의 교사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할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제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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