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참변과 용기

2008-12-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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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센트럴 커네티컷주립대 경제학 교수)

먼저 지난 12월 9일, 미국 해병대 소속 전투기가 엔진 고장으로 샌디에고 주택가에 추락하여 가족 뿐만 아니라 집과 모든 재산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린 윤동윤씨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

청천벽력으로 사랑하는 아내, 15개월 된 큰딸과 한달 반 전에 태어난 손녀와 산모를 돌보기 위해 멀리 고국에서 도미한 장모님을 졸지에 잃어버린 참변을 당하여 현장에서 쓰러지며 오열한 심정인들 오죽했으랴.신문에 게재된 결혼 당시의 사진과 함께 귀여운 두 딸의 모습은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해 주며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심정이다.당일 윤동윤씨는 형(윤치현씨)과 누나(박애숙씨)를 비롯한 가족과 평소에 다니는 샌디에고 연합
감리교회 목사와 교우들이 현장을 방문하고 기자회견을 하였다. CNN의 앤더슨 쿠퍼 방송인은 “윤씨의 말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하고 감명이 큰 내용을 청취자들이 직접 듣고 지켜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었었다.


비록 참변을 당하고 절망, 비참, 비애, 허탈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육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필자는 윤씨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확인하였다. 누구보다도 원망과 비난을 말할 입장이지만 이 모든 심정을 극복하는 발언은 아직도 기억에 똑똑히 입력이 되어 있다.우선 비행기에서 탈출한 조종사에 대해서는 추호도 나무라는 말이 없고 오히려 “이 나라의 보배이며 사고를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칭찬하는 모습은 정말 감격적이었다. 그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었다. 동시에 소천한 아내, 두 딸, 그리고 장모님이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되었다는 강한 신앙심도 배운 바가 컸었다.

지금은 모두가 크리스마스 절기를 당하여 물질적인 면에 치우치고 상업화가 된 실정이지만 시대가 어려울수록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지 다음 편지에서 엿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일본의 자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T교수의 글이다.“… 금년 말에 저희 대학에서는 변화가 많았습니다. 미국의 귀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는 H교수가 입원중입니다. 위, 식도, 간장에 종양이 생겼으며 진단 결과 암이라고 합니다. 늦게야 발견이 되어 수술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일본에서는 죽음을 앞둔 마음을 위로해 줄 카운슬러나 종교가, 의사, 소셜워커 등이 없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종교를 믿는 숫자가 적기 때문에 쓸쓸하고 불안 속에서 인생의 종말을 지내야만 되며 병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실정을 말
해주지 않기 때문에 신변 정리를 제 때에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의학은 기술면에서는 고도로 발달이 되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너무나 뒤떨어져 있습니다.”(상기 H교수는 곧 숨졌다는 소식이다)

1989년 18세 때에 도미한 윤씨는 누구나 겪은 일이지만 새로운 환경과 언어, 풍속, 습관, 문화 등이 판이한 나라에서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숨진 부인 윤영미씨와는 4년여 전에 결혼하여 ‘새 보금자리에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남편으로, 아빠로 겨우 자리를 잡게 되었다.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참사는 같은 한인으로서 그 아픔을 나누어 가질 길이 없다. 참변 속에서도 침착하고 관대한 성격으로 눈물을 억제하면서 차분하게 기자회견에 응하는 윤동윤씨의 성격은 분명히 잿더미에서 소생하는 불사조(Phoenix)임을 확인하였다.

바라건대 평생토록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간직하면서 살아 나가야 되는 현실이지만 부디 건강과 순조로운 물심양면의 회복으로 전진하기를 기원하여 마지 않는다. 동시에 같은 한인으로서 관대한 성격으로 우리 모두의 긍지와 한국인이라는 자랑을 드높이 고양하여 준 윤씨에게 찬사와 감사를 아끼지 않는다.필자는 이 자리를 빌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국의 위상과 한국인의 긍지를 높여준 윤동윤씨에게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표창장을 수여해 주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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