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아소카의 칙령을 떠올리며…

2008-12-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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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관(취재1부 기자)

얼마 전 뉴욕 교계를 대표하는 한 목사가 공식 석상에 올라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후 뉴욕의 학교들마다 ‘크리스마스’를 ‘할러데이 그리팅’으로 부르게 하는 등 이슬람 문화가 기독문화를 말살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목사는 “이슬람권이 2020년까지 미국을 무슬림 나라로 만들려 하고 있으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슬람 문화에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슬람권 선교 지원을 표방하는 해외선교단체인 ‘인터콥 선교회’도 내년 2월 열리는 대뉴욕지구한인목사회 세미나를 ‘이슬람은 이단 중 이단’이라는 주제로 준비하고 있다. 선교회는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홈페이지나 포스터를 통해 “미국과 한인교회에 이슬람의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며 이슬람권이 미국을 이슬람화 하려고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들은 사실상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부지불식 퍼져나가고 있는 소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상 미국 대법원은 1960년대 이후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가르침, 특히 교파적 가르침을 금지하고 있어 크게 걱정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슬람권에 대한 소수 한인교계의 지나친 반응이 자칫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인 뉴욕시에서 이슬람권 민족들과 쓸데없는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낳고 있다.


자이툰부대 출신인 기자는 파병차 이슬람권 나라에서 1년간 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으로 미뤄볼 때 이슬람교는 공격적인 선교 방법을 행하는 종교가 아니다. 일부 기독단체들의 민감한 발언들은 이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오히려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교세 확장을 위한 ‘내부 무마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이슬람에 대한 개신교계 일각의 예민한 반응을 대할 때마다 종교간 대화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도의 통일군주 아소카왕의 ‘종교간 화해의 실마리’에 관한 칙령이 떠오르곤 한다. 그는 인도 통일 과정에서 작은 나라인 카링카를 정복하면서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뜻으로 칙령을 발표해 백성들에게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일 것을 권고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 최대의 다원 사회인 뉴욕에서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각각의 종교가 절대적 진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이웃한 종교도 나름대로 절대 진리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이웃하는 종교와의 갈등은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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