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겸손한 탄생

2008-12-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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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교우들의 성금으로 매월 북한의 고아들을 지원하는 일에 심부름을 한지가 벌써 6년이 가깝습니다. 이 심부름을 하다 보니 이런 일 저런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지난 10월말이었습니다. 미주 여성 교우들이 우리가 돕고 있는 북한 고아 1,600명에게 성탄선물이 될 수 있도록 모자, 목도리, 양말, 장갑 등을 털실로 뜨개질하여 보내주었습니다. 추위에 떠는 고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그마치 1,200점이 넘었고, 비닐주머니에 넣고 공기를 빨아내어 부피를 줄였지만 이민가방 만한 커다란 백이 3개나 되었습니다. 이것을 12월분 고아들 식량 가는 편에 가도록, 필지가 직접 중국까지 운반하기로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항공사의 국제선에는 한 승객이 짐을 2개 밖에 가져갈 수 없으니까 하나는 초과비용을 물어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아들을 돕는 지원금을 그 일에 쓰기가 민망했고, 자칫하다가는 그 비용으로 중국 현지에서 사서 주는 게 더 경제적일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항공사 매니저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초과분은 편리를 좀 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매니저는 잠시 필자의 이야기를 듣더니 ‘곤란하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티케팅하는 분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초과 비용 120달러를 내든지 아니면 다음 손님을 위해 비켜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비용을 내고 짐을 실었습니다. 필자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을 위하여 항공사 직원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부탁은 굶주리는 고아들을 위해 작은 금액이라도 좀 아끼려고 용기를 내 본 것이고, 한국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이해하여 주리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초과비용을 내고 카운터를 떠나는 내 뒷머리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14년간 잡지사 기자로, 28년간 편집국장으로 일하여 오는 동안 자신이 이렇게 부끄럽고 초라해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필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 글을 씁니다. 만삭의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이라는 언덕마을에 도착하여 하루저녁을 보낼 주막(inn)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성경은 호적을 하려고 온 여행객들이 많아 방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점잖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목사님이 하신 해석이 생각납니다. ‘그 때 베들레헴의 여러 주막에 만삭의 마리아 한 사람 쯤 몸을 뉘일 방이 정말 없었겠느냐? 다만 형색이 초라한 부부를 받아들여서 무슨 덕이 있으랴 하는 생각에 여관주인들은 저마다 거절하였을 것이다’라는 해석이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대단한 신분의 사람이 왔다면 아마 그들은 앞다퉈 안방이라도 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기 예수께서 방 한 칸을 구하지 못해서 짐승들의 구유로 밀려나셔서 탄생하셨다면, 저 같은 사람이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아들을 위하여 제안한 부탁 한 가지가 공항에서 거절당했다고 해서 그게 뭐 대단한 일이랴 싶습니다.

그 일 때문에 요즘 필자는 오히려 나 자신이 해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문밖에서 거절하고, 짐승들의 구유에서 태어나시게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번쩍이는 장식들과 크리스마스의 대목을 노리는 상인들의 호들갑스러운 축하 속에서도 오히려 오늘도 아기 예수께서는 살만 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문전에서는 박대를 당하시고 초라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부끄럽게, 그리고 쓸쓸하게 탄생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지….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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