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타의 선물

2008-12-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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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수필가)

‘성탄절’하면 아기예수의 탄생일 보다는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오시는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와 선물꾸러미가 먼저 떠오른다.

오래 전 한국에서 성탄전야에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교회에 모여 성탄절 칸타타, 무용, 연극등의 발표를 하고 선물을 주고 받았었다. 커다란 난로에서 활 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밤새 놀다가 새벽녘이 되면 떡국이나 만두국 등으로 요기를 하고 하얀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져드는 동네 골목 골목을 우루루 밀려 다니며 집집마다 대문앞에 서서 성탄찬송을 불렀다.


아파트가 곳 곳에 들어서는 바람에 추억으로 자리매김한 새벽송이 그리워진다. 교회마다 십자가 종탑으로부터 줄줄이 땅바닥까지 늘어진 깜빡이등과 은은한 탄일종소리나 챠임벨도 멋드러졌었다.평소에 교회 안 다니던 아이들도 성탄절에는 교회에 가서 과자 봉지와 선물을 받았다.그 옛날의 성탄절은 어쨌든 훈훈했고 떠들썩했고 따뜻했었다. 지금은 한국도 그런 성탄풍경이
다 사라졌지만…

미국에 와서 처음 맞는 성탄 때는 집집마다 건물을 돌아가며 장식한 휘황찬란한 불빛과 정원 잔디 위에 늘어놓은 성탄장식을 구경하느라 차를 타고 일부러 다닌 적도 있었다.12월에 들어서서도 거리는 한산하고 캐롤송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딸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얼 받을까? 기대하고 있다.선물을 받아서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주는 기쁨이 보다 더 클 때도 있다. 어렸을 적 즐겨 읽었던 동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마 제목이 ‘작은 아씨들’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 성탄절을 맞게 되자 딸 넷이 모여서 엄마께 드릴 선물을 의논하고, 서투른 솜씨나마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고자 음식을 만들어서 파티를 준비한다.성탄절 아침 딸들의 깜짝 선물을 기쁘게 받은 엄마는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서 평소에 도와주던 어려운 이웃에게 갖다준다.부자는 아니지만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딸들에게 겸손과 절약과 봉사의 미덕을 가르치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동화다.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을 먹고 마시며 밤을 새워 즐기는 축제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웃집에 사는 모 교회 전도사가 아침 일찍 모닝커피나 같이 하자고 전화를 하여서 갔더니 기분이 몹시 우울하였다.여기 저기 교인심방을 다니다 보니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일일이 그 아픈 곳들을 어루만지고 치료해 주자니 역부족이다.

“대체 어디까지 도와주어야 하는거야? 내가 해결해 줄 능력은 없고 아침 부터 내 속만 상하네.” 어느 교인이 심방을 부탁해서 가 보니 친목계를 주선해서 하다가 먼저 타 간 사람들이 곗돈을 안 내고 탈 사람들은 돈을 달라고 아우성이고…기도해 주러 같이 갔던 집사와 부둥켜 안고 한 시간 내리 울었단다.

연말을 맞아 도처에서 훈훈한 인정과 도움의 손길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소개되지만 가난은 나라 임금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내 통장에 돈이 있다고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덥석 꺼내서 도와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 보았자 얼마나 갈 것인가? 꽁꽁 얼어붙는 이 겨울은 시린 눈물까지도 얼리고 있다. 그래도 아픈 마음 달래 주며 하소연이라도 들어 주고 같이 울어 주는 그 뜨거운 눈물로 얼어붙은 경제도 녹일 수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모두의 기대 만큼 경제 안정의 선물을 싣고 오는 성탄절의 산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곧 흰눈이 펑펑 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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