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탄의 정신

2008-12-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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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추수감사절을 지나고 나면 온 세계는 성탄절 분위기가 조성되어 축제 도가니에 휩싸이게 된다. 크리스마스는 엄밀히 따진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로서 기독교의 축제일이지만 종교의 차원을 떠나서 거의 온세계 사람들이 이 날을 축하하기에 바쁘다(제각기 자기 나름의 생각대로 이겠지만). 이 날의 주인공인 예수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가?”에 대해서 만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 아무런 뜻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군중들에 휩싸여 흥청거리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설혹 내가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성탄의 정신을 알고 지낸다면 그만큼 내 인생에 보탬이 되겠기에 말이다.

‘성탄의 정신’ 그것이 어떤 것이기에 온 세계가 이렇듯 야단 법석일까? 성탄의 정신의 첫째는 ‘봉사정신’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떠나서 죄악이 관영한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모습을 입고 내려왔다면 온 세상은 그를 진정으로 환영하고 극진히 대우했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배척하고 푸대접했을 뿐 아니라 종당에는 극형에 처하는 엄청난 죄악을 범했음에도 예수는 이를 개의치 않았다. 원래 그가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들에게 대우를 받으려 함이 아니라 인간들을 섬기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의 일생은 시종일관 약자와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봉사로 일관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봉사정신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룩하여 함께 살아가는 이상 봉사정신이 얼마나 필요하며 소중한가를 누구나 다 절감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계속해 일어나는 문제가 무엇인가? 이웃을 섬기려 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쳤고 그대로 실천했던 것이다.
성탄의 정신의 두번째는 ‘대속’(代贖)의 정신이다. 봉사는 대속의 서곡이며 대속은 봉사의 정점인 것이다. 대속이란 남의 죄를 위해 대신 죽음으로써 그 죄를 속량해 주는 일인데 이보다 더 큰 봉사가 또 있겠는가?

인간들은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 출생을 축하하며 해마다 생일 파티를 가지겠지만 예수의 경우는 단순한 생일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되어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죽음에까지 연결되는 사건이므로 축제 분위기에만 도취될 게 아니라 자못 엄숙해야 할 것이다. 만일 예수의 봉사가 대속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면 그는 하나의 휴머니스트일 뿐 구세주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들 중에도 보통이 넘는 봉사자들이 있다 해도 예수 앞에서는 자만할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그리고 다 같은 죄인의 입장에서 우리 인간이 대속의 일을 하기엔 불가능하다 해도 이웃의 죄를 함께 아파하고 그것이 어쩌면 내 죄일 수도 있다는 죄책감으로 함께 부끄러워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대속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행여라도 나는 평생 양심적으로 살아왔으니 죄악을 밥 먹듯 하는 자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일랑 갖지 않도록 함이 대속의 정신이라 생각한다.그러기에 성탄의 정신은 자연히 희생으로 귀결이 되는 것이다. 대속이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 성취되는 작업인 것이다. 세상에는 돈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식이나 기술만으
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은 생명을 바쳐야만 되는 일이 있다. 거기엔 반드시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사건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성자의 비강(卑降)이며 격하(格下)이며 죽음인 것이다. 이러한 성탄절을 맞이하여 가난을 핑계로 구제받기만을 바란다거나 또는 상관이라는 이유로 선물 받기만을 기대한다거나 대목이라는 구실로 매상고만을 올리려는 행위는 모두 다 성탄의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다.산타클로스를 기다리기보다는 각자가 산타클로스가 되는 것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을 축하하는 올바른 정신이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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