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진 자들의 환란

2008-12-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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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원(자유기고가)

오랫 만에 길상사의 ‘어른 스님’으로 있는 법정 스님이 입을 열었다. 그는 현 경제 위기에 대해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인간의 탐욕이 빚은 과업에서 비롯됐다”고 일갈했다. 이어 “이번 위기는 인간의 탐욕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며 절제를 모르는 탐욕을 경고하는 것이자, 분에 넘치는 ‘풍요의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다시 일어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금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경제위기는 사실상 따지고 보면 ‘많이 소유하고 가진 자들’의 눈 먼 탐욕에 의해 빚어 진 ‘부동산 버블’에서 시작, 무리한 투자와 부실금융이 초래한 위기가 아닌가! 한마디로 재벌에서 부터 중산층은 물론, 일반서민들 까지 주식이다, 펀드다 하며 횡재를 노리며 부당 이득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대가라는 평가를 하는 경제전문가는 많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근 ‘매도프’ 증권사기로 내로라하는 재벌, 은행들까지 포함된 ‘가진 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드러난 액수만 $50 billion… 국내 은행들마저도 얼마나 수익에 눈이 멀었으면 사기극에 휘말리는지도 몰랐으니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다. 환율이 급등하다 보니 그 와중에도 환차익을 노린 재벌기업들의 치졸한 꼼수가 포착되는 현실 또한 서글프다. 진정코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의 정신은 아득한 남의 나라 얘기인 모양이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매케인이 ‘나라가 먼저’라며“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를 도와 건설적으로 함께 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개인이나 당파의 이해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취지의 금언이다. 정치이념과 철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고 있고 초당적인 위기 대처에 앞장서자고 나서는 정치지도자가 없는 한국의 현실이 참으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 지난 10개월간 우리나라는 촛불시위와 시국기도회, 시국법회를 벌이며 구국운동이라도 하는 양, 난리를 치며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야당 국회의원들 까지 가세하였던 집회에 민노총, 남북공동실천연대, 무슨 연합 등등 수많은 단체들이 참여하며 유모차까지 동원했던 일들. 이 끔찍한 일들을 망각하고 있는 국민들의 정서와 수준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쯤이면 전 국민이 양팔을 걷어 부치고 나라를 살리자고 손에
손잡고 길거리로 뛰쳐나와 ‘범국민 나라 살리기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비단 나 혼자 만의 망상일까?

언론마다 수 천, 수 만의 시위자가 집회에 참가했다고 한 그 많은 애국자들은 모두 어디에 숨었는지 궁금하다. 가진 자들의 탐욕에 의해 초래된 환란으로 국가경제가 흔들리고 전 국민이 고통을 감내해야만 되는 현 상황에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무리들의 뼈를 깎는 각성과 참회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 불과 몇 달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입안자들과 각료들도 문제이지만 불철주야 머리를 맞대고 총력을 경주한다해도 난국 타개가 어려운 판국에 국회를 파행으로만 치닫게 하는 의원들도 최소한의 국민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켜야 나라가 바로 일어설 수 있지 않을 까 한다. 나라 부터 먼저 살리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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