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경제위기,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2008-12-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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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1921년 4월 14일 밤 뉴펀드랜드 근해에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태닉호의 사고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시 이 사고 직전 이 해역을 통과했던 다른 선박이 타이태닉호에 빙산 경보를 전보로 알렸는데 이 전보를 미쳐 보지 못해서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배에는 승객들에게 육지의 지인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전보가 쏟아져 들어와 전신 담당자가 처리할 수 없을 지경으로 쌓였다고 한다. 이 때 선장이 이 사실을 알아 빙산 경보만 보았더라면 세계 최대의 해난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일이 잘못되어 큰 재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공중폭발한 것은 연료탱크에 불꽃이 옮겨붙은 탓인데 원인은 고체연료 로켓 부품인 작은 고무 링에 균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리케인 피해로 온 도시가 초토화되었던 뉴올린즈도 미시시피 강변 제방의 아주 작은 붕괴에서 시작됐다.요즘 웰빙시대가 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데 건강과 수명
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생활습관과 식습관에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생활이 무질서하거나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면역력이 저하하며 각종 질병이나 성인병에 걸리게 된다. 또 기름진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유해물질이 포함된 음식을 먹게되면 성인병이나 각종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따라서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수명에 직결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국가가 잘 살고 못 사는데도 평소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2차대전 후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과 독일은 근검절약 정신도 세계에서 으뜸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할 때 꼼꼼하고 세밀하고 확실히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메이드 인 저팬’ ‘메이드 인 저머니’라고 하면 신용이 있다. 반면에 아프리카나 남미의 제품은 신용이 없다. 일을 대충대충 해서 물건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겪고 있는데 왜 미국에서 이러 일이 시작되었을까.

미국의 금융상품이 불량품이었기 때문이다. 부실 주택 모기지를 담보로 마구잡이로 파생상품을 만들었으니 주택 가격의 거품 붕괴와 함께 파탄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이런 불량상품의 범람을 막았어야 했는데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미국호라는 큰 배 밑에 구멍이 생기고 있었는데 이 구멍을 막지 못해서 침수로 인해 배가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금 미국이 세계 초강국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미국인 모두에게 잘못이 있지만 이런 미국인들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한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 구제금융이다. 우선 큰 회사의 도산을 막아 실업자의 양산을 방지하고 소비를 늘려 경기를 되살리자면 돈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자동차 3사에 대한 구제금융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은 미국의 대표적인 제조업이며 자동차업계 종사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그러면 망해가는 자동차회사에 구제금융을 주면 재기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 자동차회사가 망하고 있는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CEO가 수 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시간당 70달러에 이르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러면서도 일제 차나 유럽 차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서 구제금융은 시루에 물을 붓는 격이다. 자동차 산업을 살리려면 경영의 합리화, 품질의 향상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금융경색을 풀기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었고 이제 남은 길은 발권력을 이용하여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금융 경색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제를 불안하게 생각하여 돈이 퇴장되기 때문이다. 달러를 계속 찍어낼 경우에도 그 돈이 또 퇴장되면 경색 상태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외환보유고, 금융기관과 개인의 달러 자산만 늘려줄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책의 결과 달러 통화량의 급증으로 화폐가치가 추락할 경우 미국은 비참한 상태로 전락할 수도 있다. 마치 악성 종양을 고치겠다고 수은이 다량 함유된 약품을 남용했다가 종양은 나았으나 수은 중독이 되는 것처럼 미국이 돈을 마구 뿌리면 경기회복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미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위기는 돈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그 전에 정신부터 바꾸고 제도와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하며 그런 다음에 부양책을 강구하는 것이 이 위기에 대한 대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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