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인의 모습

2008-12-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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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주말이면 아내와 나는 한인 식품마켓으로 일주일 먹거리를 사러 간다. 깐 은행이 세일이라고 해서 집었더니 ‘Produce of China’라고 생산지 명이 써 있었다. 슬그머니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냉동 가공식품, 생선 가공포장된 것 등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거의 다 중국제품이다. 조심스럽게 생산지를 확인해 가며 집어 넣어야 한다.

중국산 식품에 ‘멜라닌이 섞여있다’ ‘농약에 오염되어 있다’ ‘방부제가 들어있다’며 매스콤에서 떠들어대니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하고 한숨 짓는다.한국에서 소비되는 콩 종류의 반 정도가 중국 제품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인의 식탁에 필수적인 간장, 된장, 두부, 콩나물, 두유 등 한국산이라 표시된 제품들 중 상당량이 중국산 콩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도 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13억 중국 본토인들은 무얼 먹고 살까? 중국에서 나는 것 전부가 다 오염된 것은 아닐 것이다. 비양심적인 일부 사람들이 돈에 눈 먼 지각 없는 상인들의 잘못이 중국의 체면을 국제적으로 구겨놓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미국 내 다른 가게로 잠시 눈을 돌려본다. 옷 종류와 각종 가방 등 잡화류 중 싸고 괜찮은 것은 거의 중국산이다. 이런 것들은 직접 피해가 없을 것이라 여겨 쉽게 집어 쓰게 된다.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종류도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이것도 언제인가 납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리콜’이 걸린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위생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인들은 무얼 만들어 팔고, 쓰고 있을까? 옷 종류도, 일반 잡화도, 장난감도, 자동차도, 인터넷도 외국의 제품에 다 내어주고 만성적인 무역 적자에 금융위기와 불황까지 겹쳐 거인의 모습은 참담해져 있다.경제학에서 비교 생산 이론이라는 말이 있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제품 원가가 외국에서 수입하는 비용보다 높을 때는 수입을 해서 씀으로 인플레의 억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으로 생산 원가가 수입하는 것보다 낮은 것을 집중적으로 개발하여 외국에 수출함으로 무역의 균형을 맞추어 간다는 이론이다.

아시아의 경제발전국들인 한국을 위시하여 일본, 중국, 인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팔아 자국의 살림을 꾸려 간다. 저렴한 노동비용과 미국보다 앞선 기술력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속수무책으로 미국은 당하고만 있는 것인가. 미국은 쇠고기와 밀, 콩 등 일차산업 제품으로 용을 쓰고 있다. 항공기와 전쟁무기 등이 미국 수출품의 상당부분을 점하고 있다. 이것은 거인의 도덕성과 체면을 손상하는 것이다.한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쇠고기나 밀, 콩 등 농산품의 과도한 수입은 자국의 산업을 초토화 시킨다고 거부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미국의 입장으로는 아직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도로와 주택 건설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터넷 산업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지도자의 좋은 정책과 실천 의지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모든 국민들, 정치가, 공무원, 사업가, 산업 일선의 일꾼들이 안일과 타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각오를 먼저 해야 거인의 손상된 체면을 세울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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