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흰 눈 내리는 성탄절

2008-12-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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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부러웠다. 베들레햄의 길가, 초라하기 그지없는 초막에서 태어난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먼 길을 걸어가는 동방박사들의 발걸음과 한 곳에 머문 큰 별만 바라보는 그 빛나는 눈동자가 부러웠다. 예수를 만나게 되면 하느님은 살 길을 알려준다는 그 증거를 확인시켜 주기 위하여 예수를 만나려는 유일한 소망, 그것이 나는 부러웠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무엇인가 복되고 이익이 되는 것을 먼저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냥 먼저 주는 것은 없다. 하늘의 법칙도 인간의 주고 받는 법칙과 같아서 주어야 받는다. 가뭄에 빗물을 내리게 하기 위하여 제단에 제물을 쌓고 임금들이 하늘에다 기우제를 지낸 것과 같이 우리가 먼저 각자가 가진 것을 하느님에게 드리고, 하느님이 원하는 일에 선행을 행하여야 하느님은 그 때에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에게 살 길을 가르쳐 주고 우리에게 유익하고 복된 것을 준다. 나는 동방박사의 행위에서 그것을 보았다.


동방박사는 빈 손 들고 예수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한 사람은 황금,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유향과 몰약이란 값진 예물을 들고 가 예수에게 먼저 주었다. 이 보배들의 공통점은 모두 세상에서 얻은 값이 제법 나가는 물질들이었다. 비록 세상에서 얻은 물질이라도 예수에게 주지 않았다면 그날 밤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든 동방박사 세 사람의 꿈에 하느님이 살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오던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하시니 그 말을 믿고 다른 길로 가 동방박사 세 사람
은 죽음의 화를 면하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값진 예물은 자신을 바치는 예물이다. 산 대로 살지 말 것을 증거해 주려고 온 예수를 찾아 그 먼 길을 갔으면서도 왜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을 예수에게 예물로 바치지 않았을까?

예수를 진정으로 만나기 전까지의 삶을 돌이켜 보면 안개 속의 덤불이요, 오염 속의 진흙길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명확하지 않은 선에서 사람들은 대충 짐작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면서 산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게 된 기독교인이 되고, 예수의 사랑을 만났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혼탁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린 계명을 엄히 지키고 예수의 사랑을 몸바쳐 베풀면서 새로운 다른 길을 택하여 살아야 한다는 그 복음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계명은 지켜야 할 엄명이고 예수의 사랑은 베풀어야 하는 헌신인 것을.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은 흰 눈이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눈 내리는 하얀 성탄절, 세상이 많이 어지럽고 많이 오염되어 이제는 성탄절이 되어도 흰 눈이 잘 내리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흰 눈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성탄절에 내리는 흰 눈은 예수의 말씀 가운데에서도 가장 따스한 내용의 조각이라고 여기기도 하고,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려는 예수의 따스한 눈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흰 눈이 내리는 성탄절이든 흰 눈이 내리지 않는 성탄절이든 추운 12월의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준다. 예수가 우리들 곁으로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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