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억세게 드센 팔자’

2008-12-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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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 앤 패밀리포커스 대표)

나를 세상의 식대로 표현한다면 말 그대로 무척 팔자가 센 사람일 것이다. 그것도 그냥 센 것이 아니라 ‘억수로’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아니면 어떻게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있을까 말까한 상황 속의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만나 그들의 뜨거운 눈물과 회한과 절망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게 된 인생일까? 어제도 찢어지는 듯한 답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작고한 여러 명의 부모들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상담자의 기가 막힌 사연을 듣고는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하는 생각으로 몇날 며칠을 치를 떨고 있는 거울 속의 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청소년기가 막 지난 아들이 사귀어 데리고 들어온 철없는 아이를 며느리로 맞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한 노인의 이야기다. 그는 늘 담배만 피워대는 이 여자아이를 한국에 있는 집까지 팔아 간호대학까지 보내 버젓이 자격증을 갖춘 간호사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그 후 이 어린 며느리는 아이까지 낳아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그의 남편인 아들이 불시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결국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아들을 아버지인 이 시아버지가 간호하고 돌보는 몇 달 동안 며느리는 550만 달러라는 거액의 보상금을 자신도 모르게 챙기고는 이미 전부터 만나던 남자에게로 가버렸다. 그 며느리는 또 거기서 아이를 낳고 살면서 시아버지가 끔찍하게 여기는 손주 마저 못 보게 법적으로 해놓았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분하고 참을 수가 없어 모두 다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는 생각만 갖고 살게 되었다며 털어 놓았다.


또 하나는 주위에서 너무나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소리를 듣고 살던 한 30대 남편의 기막힌 옥살이 사연이다. 그는 도박과 함께 바람이 난 아내가 돌이키기를 학수고대 기다리며 집안 살림과 사업 확장, 그리고 아들과 딸을 챙기며 살림까지 도맡아 하며 노력했다. 그런데 도리어 아내는 막말과 막가는 행동을 보여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집어던졌는데 거기에
아내가 상처를 입어 오히려 아내를 계획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는 풍토도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이국땅에서 하루아침에 비정한 아버지, 못된 남편으로 전락하여 비참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살인죄로 붙잡혀 사춘기가 막 지난 청년이 돼 수감생활을 시작한 것이 지금은 37세가 된 한 외아들과 어머니 이야기다. 그 어머니는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혼자 아들의 옥바라지를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 어머니는 아들이 올바른 마음과 정신을 갖도록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가 듣기에는 너무나 숨이 막힐 정도의 아픈 사연이다. 나의 인생은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늘 구하며 살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들에게 언제나 명쾌하게 간단히 해답과 해결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들의 눈물에 내 진실한 마음과 눈물로 반응해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함께 해주며 잠시 내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것이 전부이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로 힘과 용기를 얻는 그들을 볼 때 나는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이런 삶을 주심에 감사할 뿐이다. 바로 이 ‘억세게 드센 팔자’일 수도 있는 이 삶이 이렇게 감사하고 기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땅에 말구유의 아기 예수로 우리의 구세주, 왕이 오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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