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누구인가

2008-12-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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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수필가/세종한국학교 교감)

지난 봄학기 한국학교가 시작되면서 늘 보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
자기가 왜 여기에 와야 하는지,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고 억지로 끌려온 저학년 아이 하나가 교실에 안 들어가겠다고 버텼다.
어머니는 일단 데려다 놓았으니 그 뒷일은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듯 가버렸다.그 아이의 태도는 완강했다. 일주일 내 학교에 가서 싫은 공부를 참고 했으니 토요일은 늦잠 자고 놀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어는 아이에게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몇 주만에 교실에 정착한 아이는 가을학기에는 별 탈 없이 어울렸다. 한국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읽고 쓰기만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일부 부모들은 학기가 다 지나도록 진전이 없으면 교사들이 실력이 없거나 무성의하다고 판단한다.일주일에 한 번의 만남, 그나마 1년에 30주에서 개강식, 각종 대회, 종강식 등 행사 준비에 교
사들은 나름대로 바쁘다.학교마다 반 배정하는 것도 최대의 관건이다. 일반 학교처럼 나이별로 학년이 정해지면 얼마나 편할까? 테스트를 거쳐 반 배정을 해도 2~3주 동안은 이 반 저 반으로 왔다 갔다 정신없다.


미국에 사는 한국아이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첫째그룹-영어는 잘 하지만 한국어는 잘 못하는 아이들, 둘째 그룹-한국어는 잘 하지만 영어는 잘 못하는 아이들, 셋째 그룹-영어와 한국어를 다 잘 하는 아이들. 그 중에서도 수준 차이가 심하다. 수준별로 제대로 나누자면 한 반에 유치부부터 고학년까지 다 섞이게 된다. 규모가 큰 학교들은 학년과 실력에 맞추어 배정하기가 수월하지만 문제는 소규모의 학교들이다.

부모들이 우리 말로 대화도 나누고 관심을 가져주는 자녀들은 학습 효과가 빠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민족으로서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주체성을 심어주는 일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가 더 편한 아이들은 아예 한국어로 말하기 싫어한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도 결코 진정한 아메리칸은 될 수 없는 우리 아이
들, 차라리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더 당당하지 않을까?

우리 스스로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우리의 말과 문화를 사랑하지 않으면 낯선 나라에서 영원히 이방인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각 곳이 중고등학교, 대학에 한국어반이 생기고 제 2외국어로 한국어가 채택되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생기는데 우리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부모가 아무리 바쁘고 대화할 시간이 없다지만 그래도 이곳까지 와서 고생하는 이유의 반 이상은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고들 하던데...

전미주에 14개의 협의회 중에 동북부협의회(뉴욕, 뉴저지, 커네티컷)는 가장 회원학교 수가 많고 행사도 다양하다.한국어 동화구연대회, 글짓기, 나의 꿈 말하기 대회, 어린이 예술제, 동요대회들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지난 해부터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퀴즈대회까지 생겼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한국어 교육의 질을 높이고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애쓰는 재미한국학교 협의회가
있기에, 그래도 우리의 앞날은 밝다.한인사회에서 제대로 정착하고 세계무대로 진출하려면 무엇보다 내 민족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이 바탕되어야 한다. 그것은 억지로도, 하루아침에도 되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만큼 주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진다.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사건을 통해 우리는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안타웠다.제2, 제3의 조승희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우리의 것을 소중히 가꾸고 지켜야겠다.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한인사회와 한국학교의 책임이 막중하다.교사들과 부모들이 한 마음이 되어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물가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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