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왕의 밥상

2008-12-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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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세계 한식요리대회 조직위원장)

지난 IMF때는 우리 스스로 겪은 환란이었다면 이번에 겪는 경제위기는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 모두에게 파급된 메가톤급 글로벌 위기다.우리는 지금 주가폭락과 환율급변동 등 금융불안 공포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와 투자 등의 위축으로 실물경기에도 적색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고용의 88%를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차자하고 있는데,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의 적자도산은 물론 흑자기업 까지 도산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위기는 경제 대통령으로서 강력한 이미지를 갖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절대 절명의 위기다. 현 시국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경제위기 극복을 외치며 중국, 중남미등 세계를 돌며 자원외교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다니다 막상 국내에 들어오면 가슴이 몹시 답답해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소기업을 살려 내수를 활성화 하겠다는 의욕을 보이면서 무려 여섯 차례나
중소기업의 흑자도산이 안 되도록 자금을 공급하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대통령의 지시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령(令)이 안서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와 공공기관에서 “배 째라!” 하는 식의 복지부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으로 국난을 헤쳐나갈 인재가 안 보이니 앞날이 캄캄하다. 리더십의 문제든, 시스템의 문제든 대통령의 령이 안 선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그래도 IMF때는 장롱속의 금을 꺼내 국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위기를 잘 극복했다.그렇지만 정부 시스템이 안 돌아가는 지금, 장록 속에 묻어 둔 금도 없지만 설혹 꺼낼 금이 있다 해도 국민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 밥그릇 끌어안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동냥할 수 있는 동정심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때는 위기 탈출의 본보기로 ‘왕의 밥상이 생각난다.

조선시대 왕은 국상을 당하거나 전쟁과 흉년이 들면 소선(素膳)이라 하여 고기반찬을 삼가고 수라상의 첩 수를 12첩에서 5첩으로 줄이고 용상뿐만 아니라 푹신한 요도 물리친 채 정사를 보며 백성과 고통을 함께하였다.
다음해에 비록 풍년이 들었다 해도 왕은 신하가 세 번 주청(奏請)해야 비로소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가 5첩에서 12첩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비록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주제도이지만 “민심은 천심이오, 권력의 힘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이치를 왕 스스로가 실천한 본보기다.

지금은‘금 모으기’보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 까지 길바닥으로 내 몰리거나 내 몰릴 위기에 있는 서민들과 고통분담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때다. 얼마 전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임원연봉 30% 삭감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현재 대통령이 1억9,600만원, 국무총리 1억 4,400만원, 장관급 1억1,259만원, 차관급 1억634만원, 국회의원 1억1,3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특히 공기업 임원의 연봉은 기술신용보증기관 이사장이 3억9,600만원으로 최고이며, 공기업 임원(사장, 감사, 상임이사) 56명에게 지급된 연봉은 80억5,637만원이며 평균 1억8, 800만원을 받는 셈이다.

장차관급의 보수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11.4%가 상승했다. 물론 연도별 평균 인상 율은 3.8% 수준이다. 일반 서민들은 평생 만져 보지 못할 돈을 이들은 연봉으로 받는다.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1,000만원 정도 없다고 죽지 않겠지만 일반 서민들은 단돈 만원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이제 이들이 나설 때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금융기관 임직원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 모두 연봉의 30%는 그만 두더라도 연봉 중 10% 만이라도 왕이 수라상의 반찬을 줄이듯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회생에 내놓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활로를 열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이 고의공직자에서 각계 지도층 인사에 까지 파급된다면 그 효과는 놀라울 것이며 지도층이 존경 받는 사회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언이 꺼져가는 우리 한국경제 회생에 한 줄기 빛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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