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경과 관할권 이야기

2008-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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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내가 유럽 여행 중에 알프스 산을 넘어가는 오스트리아와 이태리가 갈리는 국경 마을에서 도로 위에 국경의 표시로 그어놓은 줄을 가운데 두고 이를 금으로 공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감명 받았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우선 국경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무장을 한 군인들의 휴전선만 겪어본 우리들에게는 가끔 우리의 상식을 초월해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사건들이 국경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월남전이 아직 한창일 때에 징병을 기피하려고 많은 징집 연령의 미국 청년들이 캐나다로 도망을 하는 때가 있었다. 이 때 시애틀에 살다가 캐나다로 도망가 있던 한 청년이 몰래 자동차로 캐나다의 뱅쿠버 부근을 통과하는 국경 도로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집을 다녀가곤 했었다.


어느 날, 청년이 자기 생일을 맞아 집을 방문하느라고 같은 국경 지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 때 미국측 국경 사무소에는 입국하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순간적으로 체크, 조회하는 시스템이 막 개발되어 있었다. 이날 이 시스템 때문에 청년이 국경선을 넘는 순간 운이 나쁘게도 즉각 청년의 징병 기피자 신분이 확인되었고 국경 관리들에게 비상 신호가 발동되었다.미국 쪽으로 막 들어선 이 청년이 국경선을 넘자 마자 갑자기 분주해지는 국경 관원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차를 버리고 캐나다 쪽으로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뒤따라온 국경관리들에게 바로 덜미가 잡혀 체포되고 말았다.

이 때 부근의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던 한 휴가중인 캐나다인 사진기자가 이 소란스러운 장면의 사진을 찍었다. 집에 돌아와 현상한 사진을 들여다 보던 기자가 한 가지 놀라운 기사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청년이 덜미가 잡혀 체포되던 지점이 분명히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에서 몇 미터 캐나다 쪽인 것을 발견한 것이다.이 기자는 즉각 미국 관리들의 월경에 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기사를 썼고 캐나다 정부도 미국 관리가 캐나다 땅에서 불법 체포한 청년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항의를 하게 되었다.
사진에서 체포한 지점이 분명히 캐나다 쪽인 것이 확인된 이상 미국 정부로서도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었고 미국정부는 하는 수 없이 기피자로 체포한 자국 청년을 캐나다의 외교관을 통해
신병을 인계하고 말았다.
이 때 이 사건 때문에 어수룩해 보이는 국경선에 이런 예민한 차량 조회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
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되었고 캐나다에 숨어있던 기피자들은 국경을 넘지 못했다.
이 청년이 체포된 지점이 불과 몇 미터 캐나다 쪽이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미국 내에서도
비슷한 관할권 때문에 흥미있는 사건이 일어나는 때가 있다.
뉴욕 맨하탄 북쪽 끝은 브롱스로 건너가는 이스트 리버이고 누구나 이 강이 맨하탄과 브롱스의
경계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옛날 이 지역은 조그만 섬들이 흩어져 엉켜있는 늪지대 비슷한 곳
이었는데 강을 넓히고 배가 드나들기 좋도록 재개발을 해서 오늘날의 강으로 변모한 곳이다.
이 재개발 공사 때에 강이 가로지르는 선이 맨하탄과 브롱스를 가르는 경계선과 정확하게 일치
하지 않게 개발되는 통에 맨하탄의 북쪽 일부가 강의 북쪽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까지도 강 건너 브롱스 쪽에 붙어있는 일부의 땅은 행정구역상 보기와는 달리 맨하탄에 속해
있지만 이곳이 맨하탄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렇다 보니 이 불분명한 경계선 때문
에 가끔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지는 때가 있다.
몇 해 전에 브롱스에서 가택침입 절도혐의로 체포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고 있었
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우연히도 이 사건을 검토하는 기회를 갖게 된 한 변호사가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관한 의문을 하게 되었고 그 장소가 이 절도범이 유죄 판결을 받은 브롱
스 법원의 관할이 아니라 장소는 분명히 맨하탄 법원 관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변호사가 이 사건의 재심을 신청하게 되었고 항소법원은 그 이유를 확인하고 관할권이 없는
브롱스 법원의 판결을 무효로 하는 판결을 얻어내게 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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