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몽골 대통령의 연설과 서독 광부

2008-12-06 (토)
크게 작게
정영휘(언론인)

지난 해 5월,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이 한국에 국빈 방문차 온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그 분이 베푸는 리셉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날 몽골 대통령의 스피치를 들으며 나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국가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피치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우리 몽골인 여러분은 지금 몹시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원은 있으나 기술이 없고, 영토는 넓으나 소득이 낮아 세계적으로 후진국가에 속해 있습니다. 한국은 땅이 좁고 자원은 부족하지만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 교육수준이 높고 과학
기술이 발전해 있어 산업과 무역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몽골은 한국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길에 내가 앞장 서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국민도 배불리 먹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앞줄에 참여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여기서 지난 날의 우리 처지가 가슴 메이게 떠오른 것을 누를 길이 없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 때의 일화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대통령을 맞이하는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 500여명이 모인 루르탄광 공회당에서 부르던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대통령과 광부, 간호사의 목메인 제창은 끝을 맺지 못했다.“여러분, 나는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
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반드시...”
대통령의 연설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광부, 간호사 뿐 아니라 곁에 있던 육영수 여사와 뤼브케 서독 대통령도 손수건을 꺼내들었고 공회당 안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정말 그 때 우리는 그랬었다. 먹을 것 없고 일자리 없던 조국을 떠나 우리 젊은이들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잘 살던 독일로 팔려나간 것이다.그런 피와 눈물의 결실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기술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다. 태국의 국민소득이 220달러, 필리핀이 170달러일 때 한국은 고작 80달러였으니 나라 사정이 얼마나 궁핍했었나를 알만 하다. 우리의 3배
에 달했던 태국의 국내총생산 GDP, 지금은 우리가 그들의 7배다. 현대자동차의 연간 수입은 베트남의 GDP와 맞먹을 정도다.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이 싸고 토지가 많다는 것은 최고의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를 가쳐 정보화시대에 들어선 오늘, 그런 것으로는 게임이 되질 않는다. 이젠 사람이 경쟁력이요, 사람이 곧 재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지적 자원만으로 나라가 부흥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바른 정책과 국민의 나라 생각하는 마음이 함께 했을 때 가능하다. 정치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때, 국민 각자가 자신의 잇속 차리기에만 매달리지 않으며 수많은 이익 집단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정한 룰을 존중할 때, 나라는 부강해지고 그 안에서 사는 백성들은 모두 잘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고, 나의 존재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큰 조직체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