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있을 때 잘 해”

2008-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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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있을 때 잘 해, 흔들리지 말고, 가까이 있을 때, 붙잡지 그랬어, 있을 때 잘 해. 그러니까 잘 해…” 한 때 유행했던 이 노래 가사는 상대방이 있을 때 잘 할 것이지 상대방이 떠나고 난 다음에 아쉬워 하거나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제나 가까웠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이 있을 때는 잘 해주지를 못하고 떠난 후에야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설혹 마음을 다하여 잘 해주었다 하더라도 떠난 후에는 “더 잘할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후회 가운데서도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돌아가신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한 경우이다. 부모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는 효도는 커녕 사사건건 말썽만 일으켰던 사람도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부모 생전에 효성이 지극했던 사람도 아쉬움을 갖기는 마찬가지이다.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말은 상대방이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말이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아들로서 또는 딸로서 잘 했더라
면 부모에게 효도를 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그토록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부모도 생전에 가슴아픈 일이 없이 행복한 생애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 자리에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에게 잘못을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사장이 잘못하면 많은 사원을 힘들게 하고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잘못하면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국민과 국가가 고난 속에 빠진다. 어느 자리나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잘 해야 한다.

퇴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부시대통령이 지난 1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금융위기로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연금에도 피해를 준 점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사담 후세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데 실패했던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9.11 테러 직후 90% 이상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그가 이라크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경제침체까지 불러와 사상 최악의 대통령 반열에 오르면서 정권마저 송두리째 빼앗긴 후 이제야 때늦은 후회를 한 것이다. 그의 후회는 한 개인의 후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미국인, 나아가서 전세계인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친북세력을 규탄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지난 1993년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했던 말은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 취임사 이후 재임시 비전향 간첩을 북한에 돌려보내고 좌파 인사를 중용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계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친북좌파를 공격하고 있다. 정말 그가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잘 했더라면 외환위기도 없었을 것이며 지금 이렇게 심한 좌우갈등으로 나라가 망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모두 이처럼 잘못한 사람들 뿐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 역사상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온몸을 바쳐서 일했던 위대한 인물이다. 세종시대는 태양 흑점의 영향으로 일조량이 적어 농사에 최악 조건이었다. 그래서 흉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게되자 그는 궁궐 안에 초막을 짓고 2년 동안 그 안에서 살면서 백성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고통을 함께 했다. 그러면서 농업에 필요한 수많은 과학기구를 개발했고 문화를 발전시켰고 국경을 확장했고 한글을 창제했다. 그가 국왕으로 있을 때 잘 하였으므로 5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국토에 살며 그 한글을 쓰고 있다. 그의 업적은 우리 민족이 존속하는 한 영원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정말로 있을 때 잘 해야 할 사람이 한 사람 있다. 바로 북한의 김정일이다. 그가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는 동안 북한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으로 가득찬 생지옥같은 나라가 되었다. 남한과도 계속 갈등을 빚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악명을 날리는 나라가 되었다. 나라를 이렇게 만든 그가 그 자리를 떠난 후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최근 그의 와병설을 계기로 그가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큰 질병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이 60이 넘으면 언제 죽을지를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북한에서는 후계자 문제가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데 후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 그 자신이 있을 때 잘못된 단추를 바로 끼우는 일을 해야 한다. 북한사람들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길이 있다. 또 남북한과 세계가 평화롭게 사는 길이 있다. 김정일은 죽기 전에 그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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