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불황과 문화

2008-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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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취재2부 기자)

수십 년만의 불경기라는 요즘 어떤 분야건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뉴욕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인 문화 산업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 힘든데 문화를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토니상을 수상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검증받았던 대작 뮤지컬들이 줄줄이 막을 내리고 있고 새로운 작품들도 준비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발을 빼는 상황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외지에 실린 한 연극 프로듀서의 말에 의하면 연극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익이 아니라 고급문화에 투자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투자하는데 그 부자들이 대부분 월스트릿 붕괴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월가 금융인들의 오만과 탐욕이 지탄의 대상이 됐듯이 스타들이 등장하는 일부 연극과 뮤지컬은 지나치게 ‘오만한 가격 책정’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프로듀서스의 대성공으로 더욱 성가가 높아진 멜 브룩스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수백 달러가 넘는 가격을 티켓에 매겼던 ‘영 프랑겐슈타인’이 대표적인 예다. 결국 이번 달로 종영을 결정했다.

한국 서점에도 책이 안 팔리고 CD가 안 팔린다. 한 관계자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이 안 나간다”고 전했다. 나오기만 하면 일단 팔렸다는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의 음반도 시들하다고 한다. 연말 선물용이나 소장용으로 좋은 문화 상품이라는 기사를 준비하면서도 솔직히 “한인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용한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과연 지금 170달러를 주고 밥 딜런의 컬렉션을 선뜻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50년대 고전 영화 모음 DVD를 구입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등등의 생각이 계속 들면서 차라리 값싸게 CD와 DVD를 구할 수 있는 매장 안내, 무료 공연 안내 등의 기사가 훨씬 실용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아이쇼핑을 통해 비록 명품을 소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신 패션 트렌드나 안목을 높일 수 있듯이, 주요 미디어의 문화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최신 문화 아이템들의 내용이라도 아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진짜 걱정은 늘 여유롭지 않은 한인 문화인들이 당분간 더욱 쪼들릴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먹고 살기 바빠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는 사람도 줄고, 작품을 구매할 사람도 줄고, 후원자의 수도 줄고, 정부의 문화 보조금도 줄 수 있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난 두 명의 연극인은 공통적으로 “늘 어려웠기 때문에 걱정 안한다”고 밝게 웃었지만 괜히 기자가 자꾸 걱정이 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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