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대를 역행하는 남북관계를 보며

2008-12-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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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뉴욕 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사춘기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성장통을 겪는 자녀들에게 애타는 인내와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좋은 약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잘못된 길로 나가려는 자식, 특히 반항적인 아들을 대할 때 고압적인 태도보다는 대화와 설득을 통한 유화적 태도가 훗날 좋은 부자간의 관계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 또한 배우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던 때, 내가 살던 동네에 아들과 말싸움 해서 불행히도 주먹싸움까지 간 아버지가 있었다. 나도 때때로 반항적인 아들을 대할 때 힘으로 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순간들이 많았으나 끝내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 부자지간의 폭력은 그 관계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애타는 인내심으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표시하고 대화와 설득을 시도한 결과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춘기를 지나고 성년이 된 자녀들은 드디어 부모들의 애절한 사랑과 각고의 인내를 깨닫고 그들을 낳아 길러준 부모들과 화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된다.


나는 요즈음 해외 동포, 특히 미주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남북관계를 지켜보며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동안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참 보기가 좋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임 두 정부가 어렵사리 발전시킨 남북관계를 무위로 돌리며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미주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북한보다 수 십배 이상 가는 경제력과 세계에서 두번째 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과도한 개인의 자유를 누리는 남한이 개인의 자유도 없고 인간의 기본권인 의식주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을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남한의 국민과 위정자들이 북한에 대해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태도를 견지할 수는 없을까?.. 북녘의 동포들을 ‘잃었던 아들’이나 한 뱃속에서 난 형제라고 생각한다면, 잘 먹고 잘 사는 남한이 그 알량한 경제협력 가지고 어찌 ‘퍼준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 남한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북한에 관한 한 그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은 50년 이상 한반도를 지배한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냉전체제는 우리 민족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국과 소련’으로 대변되는 외세가 무능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 민족의 어깨 위에 씌워준 분단의 멍에였던 것이다.

생각컨대, 남한이 핵무기를 만들 줄 몰라서 안 만드는 것도 아니고 북한은 핵무기가 좋아서 가지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유치한 체제 호신 무기에 불과하다. 개인도 신체에 위협을 느끼면 호신 무기를 갖기를 원한다. 위협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호신 무기를 소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 논리로 북한이 핵무기 버리기를 원한다면 북한이 체제에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6자회담’의 성공적 결론이 요구되는 이유다.우리 근세사를 보면 국제정세에는 까막눈이고 당리당략만 생각하던 소인배 위정자들 때문에 우리 민족이 격은 고초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전환기에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당파싸움이나 일삼던 이씨조선의 위정자들이 저지른 죄과는 지난 100년 동안 무고한 우리 민족에게 강요된 수난과 고통의 역사였다.미일 비밀협약 ‘태프트-가쓰라’조약으로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고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수탈한 역사, 해방 이후 60년이 지나도록 외세가 씌워준 분단의 멍에를 스스로 벗어버릴 줄 모르고 티격태격하면서 반신불수로 살아온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남과 북의 위정자들의 석고대죄의 대오각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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