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무는 한 해

2008-12-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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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일년 열두 달을 살지만 한 해는 저물게 마련이다.12월은 일년 중 마지막 달이고 추운 겨울이다. 크리스마스쯤 되어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추위를 다 동댕이치고 밖으로 나가 들뜬 마음으로 길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 해가 다 간다는 시간 앞에서는 서운하기도 하고 공허한 생각도 든다.

하필이면 왜 추운 겨울, 그것도 마지막 달을 골라서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을까? 인생은 날이 가고 나이가 들수록 추워진다. 그리고 공허한 생각이 들어 말수가 줄어들고 옛날을 회상하는 횟수가 늘어나며 화살의 속도보다 빠른 시간 앞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추운 겨울에 따스한 옷을 들고 공허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고통이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오시지 않는다. 공허하지 않은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 한달, 아니 일년을 살면서 늘리고 쌓는 데에 전력을 다 했다. 저금통장에는 숫자를 늘리려고 전력을 다 했고, 지식을 쌓으려고 전력을 다 했고,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행복을 쌓으려고 전력을 다 하면서 일년을 다 보냈다. 있는 것을 벗어버리고 무겁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일은 없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 없으니 효도라는 말을 시끄럽게 쌓았고, 형제가 화평하지 않으니 자애라는 말을 흔하게 쌓았다. 친구와 이웃 사이에 믿음이 없으니 덕이란 말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쌓았고, 평화로운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던 지식인이니 충신이니 지사니 하는 말을 사회가 혼란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니 철철 넘쳐 나도록 쌓았다. 아무도 쌓아놓은 것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는 귀하나 상대방은 천하고, 자기는 아는 것이 많으나 상대방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나는 능하나 상대방은 별로 라고 생각하는 자기우위의 차별과 만용을 남모르게 지닌 자에게는 인간
의 평등사상이나 평화라고 하는 이념을 실천할 수가 없다. 세상은 그래서 춥고 세월은 그래서 공허함을 결과로 놓고 훌쩍 가버린다. 인생에도 마지막은 온다. 마지막에 바라보는 인생의 추위, 그래서 예수님은 추운 겨울 공허한 마지막 달에 오신 것이 아닐까?

이제 곧 성탄일이 다가 온다. 성탄일이 들어있는 12월은 우리 마음에 따뜻하다. 그러나, 혹시 지나간 일년동안 걸어온 길에 예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걸 흘리고 오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주워 담을 수 없는 죄지음은 없었을까? 받기만 좋아했을 뿐 돌려드린 것 한 종지라도 있었을까? 은혜만 바랐을 뿐 지기노릇은 했을까? 이제 곧 성탄일이 다가온다. 열두 달을 걸어온 우리는 기쁨과 희망과 찬미를 들고 평화와 부활의 약속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베들레햄을 향하여 계속 걸어가고 있는 동방박사인지 아니면 공허한 마음을 움켜쥐고 소망 없는 절망과 사망의 엠마오를 향하여 걸어가는 예수님의 제자는 아닐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살아서는 평화요 죽어서는 부활이란 사실을 증거 해 주시었다. 그래서 이번 12월의 노을은 심장을 씻어내는 새 피로 아주 빨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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