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과 북한 개성 방문기

2008-11-29 (토)
크게 작게
송정훈(대뉴욕지구 한인보험재정협회 회장)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미국으로 부모를 따라 이민을 떠난 것이 1981년이었으니 꽤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래서 조국이 그립고 가끔은 가보고 싶지만 내가 하는 일이 쉽게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그런데 지난 9월 초, 2주간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첫째 방문 목적은 대뉴욕지구 한인보험재정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한국의 주요 보험사, 금융감독원, 전북도청, 새만금사업장,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보험금융학과를 방문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 자문위원 자격으로 전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미간에 보험과 금융업계가 더욱 많은 협력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금융감독원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과 미국의 보험이나 금융 시스템의 차이점을 일부 배울 수 있었다. 또 보험 전공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학생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젊은이들이 보험 전문인으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었다.전북도청의 배려로 도청에서 제공한 미니버스를 타고 새만금 사업장을 둘러 보았는데 바닷물을
수문으로 조절하는 엄청난 사업규모에 놀랐고 이미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이 사업이 잘 발전되어 나라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 중의 하나가 개성 방문이었다.
우리는 9월 11일 새벽, 서울을 출발하여 남북 출입사무소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출국수속을 받고 북측의 최종 입국허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허가가 나오고 비로소 비무장지대를 건너기 시작하였다.북측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한 후 두 명의 북측 안내원이 각 버스에 승차하여 같이 개성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매일 북한 주민들이 개성에서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수 백대의 버스가 줄지어 서있는 개성공단을 지나 박연폭포로 갔다. 박연폭포는 생각한 것보다 큰 폭
포는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북한의 첫 명소였으므로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이 좋았다.

버스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관광지에서의 사진은 허락되었다.우린 개성 시내에 있는 통일관에서 놋그릇 13첩 반상으로 식사를 하고 선죽교와 정몽주의 집터에 세워진 숭양서원, 그리고 지금은 고려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려 성균관 등을 방문하였다.마지막으로 성균관 앞에 있는 상점에 들러 나는 놋으로 만든 수저와 젓가락을 구입하였다. 북한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은 달러 뿐이었다. 나는 이번 방문을 통해 아직도 남북간에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음을 실감하였다. 60여년이란 세월이 남과 북을 이질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북한의 폐쇄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곳곳에 개발해야 할 것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은 개성공단과 개성 관광길을 막는다고 하니 답답할 뿐이다.내가 만났던 북한 안내원은 남북은 한민족이니 무조건 대화를 하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