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벼랑끝에 선 가장들

2008-11-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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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 발 금융대란이 실물경제로 여파가 미치면서 지구촌에 감원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엄습한 고용대란이 불어 닥친 겨울 추위보다 더 매섭게 느껴지는 금년 겨울이다. 금융계뿐 아니라 자동차, 통신 등 전 산업에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누가 이런 고통이 우리에게 엄습할 줄 알았겠는가! 일찍이 시작된 감원바람은 소형이든, 대형이든 규모와 관계없이 가게나 회사에 속한 우리 모든 집안의 가장들을 무한정 긴장시키고 있다.

“여보, 회사에 무슨 일 없죠?”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된 이 제목은 최근의 심각한 현실을 잘 반영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생계를 짊어진 가장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나머지 갖는 모든 아내들의 염려인 것이다.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언제, 어느 때 나의 일자리가, 내 가게가 날아갈지 모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국에는 벌써부터 직장의 감원바람으로 수많은 가장들이 벼랑 끝에 몰려 위기에 떨고 있다 한다.


간신히 들어간 직장인데, 봉급보다 내가 올린 매출이 더 적어 버티지 못하고 칼바람을 맞는 가장들이 요즈음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누구보다 잠 못 자는 사람들은 이미 10년 전 눈물을 머금고 직장을 나와 창업으로 살 길을 찾았지만 결국 영세업자로 전락한 수많은 IMF 퇴직자들이라고 한다. 그때만 해도 퇴직금이라는 재기의 밑천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없어 자영업에서 조차 문제가 생기면 그걸로 끝장이다.

참혹한 취업난과 구조조정의 살벌함 속에서 가까스로 버텨낸 30대 중반의 경우, 이들을 받아줄 일자리는 물론 없고 이들 스스로도 이제는 더 이상 이 위기를 견뎌낼 힘이 없다고 한다. 불황의 그림자는 빈곤가족 전체를 한계적 상황으로 내몰면서 이들의 빈곤층화는 이미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이것이 어디 한국뿐이던가! 우리가 사는 이곳 미국의 한인사회도 실물경제로 이어지는 이 경제대란의 여파를 누구인들 피할 수 있을까.
이미 한인 상점이 많이 들어선 플러싱 노던 상가는 한파가 몰아쳐 어쩌다 한번 가보면 가게에 손님은커녕, 한산하기 그지없는 곳이 많은 게 요즈음의 실정이다. 업주들은 이제나 저제나 오는 손님을 기다리며 다가올 월 렌트 비와 경비, 그리고 직원 봉급을 어떻게 지불할까 가슴을 졸이고 있다. 이래 저래 가장들은 전전긍긍 불안에 떨고 있다.

심지어 한 홈리스 기관에 의하면 허름한 차림의 빈곤자들만 찾아들던 이 기관에 요사이는 멀쩡한 차림의 집 없는 홈리스들이 더 많이 찾아들고 있다 한다. 이중에 70%가 흑인보다는 갑자기 잡을 잃고 모게지를 못내 집을 잃은 백인들로 모두 얼굴을 가린 채 줄서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도산과 감원으로 한인업소들의 매출은 지금 거의 약 40% 정도씩 줄었고 이런 현상은 급속한 속도로 다가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신용위기로 기업이 파산하고 금융대란으로 인해 고용감소와 경기침체 등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비즈니스가 금방 살아날 특단의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 갈수록 업소와 기업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미 노동부는 13일 1주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한 실직자가 389만 7000명으로 1983년 1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도 아직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뉴욕시가 일자리를 2만 5000개 만들고 소상인들의 안정을 위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또 연방정부는 대형 금융기관 등에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내놓았다. 하지만 워낙 거세게 밀려온 파도가 잠잠해 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오바마 차기 정부도 250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최대 7000억 달러의 초대형 추가 경기 부양책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것이 지금과 같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살아날 기업이 없고, 버텨낼 가정이 없어 보인다. 이 위기가 이제 남의 일
이 아닌 것이다.

새로 당선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사람들은 모두 경제부터 살려 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난제가 어디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금방 해결될 문제인가. 아무리 대단한 전문가라도 이 위기를 넘기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때까지 가장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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