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2008-11-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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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수필가)

지난 해 돌연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제부터 우리도 격식을 차려서 터키를 구워보자”는 언니의 명령대로 둘째인 내가 냉동되지 않은 터키를 중간 크기로 한 마리 사다가 소금물에 2~3시간 담구어 놓았다가 건져서 버터를 골고루 바르고 후추와 향신료를 듬뿍 뿌려 오븐에 굽기 시작했다.

언니는 친절하게도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뒤집어 놓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는데 워낙 덩치가 큰 것이라 뒤척이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첫번째 터키는 성공적으로 구워졌고 이후로는 매 해 모여서 터키 데이를 갖기로 했다.Thanksgiving Day인 11월 넷째 목요일부터 4일간은 연휴이기에 가족여행이나 오페라, 음악회 등의 행사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요일은 Black Friday로 일년 중 가장 파격적인 세일을 한다고 각 샤핑센터마다 새벽부터 줄서기 경쟁이 치열하다. 평소에 물건들을 점찍어 두었다가 그 날
사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계산대에서만 2시간을 서 있었다는 사람도 있다.


다음은 Thanksgiving 데코레이션이다. 주택가나 상점 진열장, 샤핑센터의 장식, 교회의 단상이 커다란 호박과 각종 과일과 채소 과일, 가을꽃들을 소재로 풍요롭다.해마다 Thanksgiving은 성탄절과 함께 한 해를 대표하는 행사로 이렇듯 소란스럽게 지나갔다. 가을도 낙엽과 같이 쓸려 덤으로 딸려가 버린다.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한국 교회의 추수감사절은 1904년 제 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한국 최초 7인의 목사 중 1인,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 소래교회의 창시자)의 제의로 정해졌다. 그 후 1914년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11월 셋째 주로 변경하여 드리게 되었으며, 1621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온 청교도(Pilgrims)에 의해 첫 수확의 감사를 드림으로 시작된 Thanksgiving이나 감사의 의미는 같다.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에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과일 바구니를 들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위로하는 행사를 가지기도 한다.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찾아 아래를 내려다 보면 우리는 감사할 여건이 참 많다. 하지만 위를
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불만이 쌓이게 된다. 항상 풍성한 것들은 그 필요가치를 못 느끼게 되므로 감사도 모르게 된다. 우리가 늘 마시는 공기, 물, 햇볕 등의 자연, 또 남이 못 가진 것을 나는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것도, 일을 마치고 돌아가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도, 경제 위기에 직면한 요즈음은 더할 나위 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나는 가진 게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종합병원에 한 번 가 보자. 영안실, 중환자실, 수술실, 내과, 외과, 정형외과, 안과... 한 바퀴 돌고 나면 아직은 건강을 잃지 않은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게 될 것이다.아니면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해 보자. 나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허황된 꿈을 버리고 현재 나의 상황에 맞게 아끼고 절약하며 우리 모두가 애쓴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안정될 것이다.

경기가 침체하면서 한국에서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유행하던 ‘아나바다 운동’이 재개되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중고품 거래 인터넷 사이트도 호황을 맞고 있다.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쓰면 가치를 발하는 물건들. 서로 나눔으로 올 가을에는 감사의 물결이 서서히 밀려오게 하자. 사랑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고...
감사의 향기가 은은히 모두의 가슴을 적시게 하자.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감사의 대상을 바로 알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
는 기쁨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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