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인내가 요구되는 때

2008-11-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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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한 해가 기웃 기웃 저물어 간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곧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된다. 다른 해 같으면 크리스마스 시즌의 노래들은 라디오에서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나왔는데 올 해는 그 보다 일주일쯤 먼저 시작되었다. 불경기에 얼어붙은 민심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일찍 크리스마스 노래들을 시작했나 보다.

미국의 명절 중에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모두들 명절을 맞이하는 기분들이 아니다. 왜 그런지 추위도 일찍 시작되어 사람들마다 코트의 깃을 잔뜩 치켜 올리고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저들의 갈 길을 가고 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대부분 그림자를 갖고 있다. 밝지가 않다. 어려워도 마음만은 밝게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못한 것은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불황의 터널은 이제 시작이라고들 한다. 그러면, 시작인 불황의 터널은 언제나 끝이 날 것인지 더 불안해 진다.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란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가는 날들이 많은데 경기불황까지 겹쳐 사는 것이 말이 아니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더’ 차분해지고 허리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들 한다. 그렇다. 차분해지고 허리를 졸라매야 한다. 그리고 입을 ‘더’ 악물어야 한다. 돌고 도는 세상이다. 불황이 시작됐으니 반드시 그 끝은 올 것이다. 우리 대에 오지 않으면 우리의 후대에라도 불황은 끝이 나고
야 말 것이다. 우리의 후대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더 졸라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차분해지고 졸라매야 하는 방법이 문제다. 어떻게 차분해져야 하며, 어떻게 졸라매야 하는 것인지 알아야 불황을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끼 먹는 끼니를 한 끼만 먹어야 졸라매는 것인지, 아니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라면을 먹는 것이 졸라매는 방법인지 막연하기만 하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졸라매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다.

졸라매는 것이란 우선 눈에 보이는 지출부터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가계에서부터 시작해 모든 씀씀이를 확, 반으로 줄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생계비만 유지할 것. 이렇게 살아가려면 또 문화비 같은 것도 줄여야 한다. 외식도 가능한 줄여야 할 것. 집에서 오순도순 가족들끼리 모여 저녁을 먹거나 특별한 날일 경우는 조촐하게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방법도 있다. 연말연시다 하여 모이는 각종 단체들의 송년파티나 신년파티를 가능한 한 축소시켜 다 같이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 쪽에서는 졸라맨다고 허리띠를 잡아매는데, 또 한 쪽에서는 흥청망청 파티를 열어간다면 그 보다 모순은 없다. 이렇듯 어려운 불황에서는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불황이라고 아이들에게 줄 용돈은 깎아 내리면서 어른들은 쓸 것 다 쓰고 다닌다면 후대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본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특히 어른들은 술을 삼가야 할 것. 어른들의 약점 중 하나는 경기가 좋지 않아지면 더 찾게 되는 것이 있는데 술과 오락 혹은 도박이다. 한탕하려 도박을 한다든지, 술에 취해 세상만사를 잊어버리자 하는 방법은 착각이다.
집안에 있는 전등도 불필요한 것들은 켜 놓지 말자. 단 한 등의 전기료라도 아끼는 것이 불황을 대처해나가는 마음의 자세다. 있는 등 다 켜놓아 집안이 밝아지는 것은 좋다. 집안만 밝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가족이, 가정이 환하게 밝아져야 된다. 수입은 한정돼 있는데 수입보다 더 많이 나가는 지출을 줄일 수 없을 때 마음이 밝아질 리는 없는 것이다.
세탁소들이 문을 닫고 네일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다. 네일 가게는 문을 닫아 노는 사람들로 넘친다고 한다. 세탁소와 네일 가게 등이 문을 닫는 원인은 손님들이 떨어져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감원당하지 않은 상태의 봉급 받는 직장인들이 제일 경기가 좋은 시절이 요즘이라고 농을 하기도 한다.

한인 상가들은 무비자 시대가 되어서 경기가 풀릴 수 있다는 기대도 해 본다. 여하튼 희망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경기가 불황이라 해도 희망마저 포기해 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불황의 시기가 우리의 좋지 못했던 소비관행을 저축관행으로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끝까지 참아내는 인내가 요구되는 때다. 모든 가족이, 모든 직원이 하나같이 내핍한 가운데서 가정을 살리고 .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면서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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