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기 맞은 개성공단

2008-11-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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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개성공단이 위태롭다.
그동안 남북한 화해, 협력의 성과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던 개성공단 사업이 “대북 비방 그만두지 않으면 통행 금지하겠다”는 북측의 최후통첩성 경고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얼어붙었던 남과 북은 해빙기에 들어섰고 쌍방은 합의에 따라 상호 비방을 중단하고 화해, 협력이 이루어져 다방면으로 그 범위를 넓혀왔다.

개성공단 사업이란 남북한이 공동으로 휴전선 이북지역인 개성 일원에 중국의 선전이나 샹하이 푸둥 경제특구와 같은 국제 자유경제 지대를 만들어 제조업, 상업, 금융 및 관광사업을 포함하여 경쟁력 높은 종합적 국제 자유도시로 개발하자는 것이다.2000년 8월, 현대아산(주) 대표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만나 남북이 힘을 합쳐 공업지구 건설을 추진하자고 합의하면서 사업은 시작되었다.2년 후 8월, 제 2차 남북 경제협력추진위가 결성되고 사업의 구체적 추진을 협의하면서 같은 해 11월, 개성 공업지구법이 발표되고 12월에 공식 착공되었다.


북측은 70년간 토지 이용권을 남측에 빌려주고 남측은 각종 사업권을 확보, 자유경제지대 투자환경을 조성한 후 국내 기업에 분양하는 방식으로 진행키로 하였다.총면적은 2,000만평, 이중 개성공단이 850만평, 배후 도시가 1,150만평이다.입지는 한반도 한가운데 있어 인천공항 등 물류 허브에 가깝고 서울 등 수도권 대소비지와도 연계된다. 북은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여 고용을 늘리고 외화를 벌게 되며 남의 기업들은 중국보다 더
싼 북의 노동력, 그러면서도 교육수준 높고 규율 있는 우수한 동포를 활용함으로써 경쟁력을 회복하고 도약의 기회를 얻게 된다.

개성공단 사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주, 평양, 신의주, 나아가 나진 선봉지구까지 확대 발전할 수 있고 경의선, 시베리아 철로를 이용하게 되면 값싼 물류비용으로 유럽대륙 시장까지 진출, 한국 경제는 또 한번 웅비의 기회를 얻게 된다고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부풀어 있었다.북한도 남북의 경제협력으로 빈사 상태의 경제를 회복, 이른바 연착륙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장차 적은 통일비용으로 민족의 숙원인 통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이 사업은 남북한 온 민족의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올들어 남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는 다시 뒷걸음질치고 있다.“비핵, 개방 3000”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고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권의 화해 협력, 이른바 햇볕정책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면서 기득권 세력의 ‘반북, 반 김정일’ 정서를 등에 업고 6.15, 10.4선언의 이행을 사실상 백지로 돌리는 대결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거기에다 관광객 피살이라는 불행한 돌발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사업은 중단되었고 최근 일부 반공단체들의 연이은 대북 삐라 살포사건들이 북을 자극하면서 북한 군부는 개성사업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모처럼 싹트고 발전해 왔던 남북 화해, 협력 통일의 기운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북은 삐라 살포 방치의 본질이 곧 숨겨진 대북 정책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한편 국제환경은 어떠한가?부시정부도 악의 축이라던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뽑아주고 적성국 교육 금지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2개의 코리아정책으로 방향 전환, 한반도 비핵화 추진과 함께 이 지역 평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뿌리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금융대란을 겪으면서 미국에서는 정권이 바뀌었고 세계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내년 1월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한반도 주변 정세와 동북아 정치 지형은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북미간 직접 담판으로 북한 핵문제가 잘 풀릴 경우 사태 진전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50년 이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평화의 봄기운이 찾아들 것으로 기대된다.정세가 이러함에도 모처럼 어렵사리 이룩된 남과 북 민족의 성과물이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가려하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고 역사의 방향타가 가리키는 쪽과는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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