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Jim Jones 목사

2008-11-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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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구(목사/탈북난민보호 미주협회장)

11월 18일로 Jonestown의 신도 독살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Jim Jones 목사에 의해 독살된 신자는 990여명이 된다고 하나 아직까지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15일, 16일 이틀간에 걸쳐 CNN과 NBC에서 두 시간씩 Jonestown에 대한 사건을 방영해 줌으로 30년 전의 목사의 자기 신도 독살사건이 세상을 또 한 번 경악케 하고 있다.
처음 Jim Jones 목사는 훌륭한 목사, 최대의 신유은사자, 설교 잘하는 자, 교회를 급성장시킨 성공적 목회자, 사회운동가로 각광을 받았다. 1977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마틴 루터 킹 상도 수상할 정도로 명성을 얻은 자였다.

그러나 종말은 이단자, 정신분열증 환자, 간음자, 살인자로 끝나고 말았다. 자신의 죄악을 번민하면서 혼자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그의 설교를 진짜로 믿고 따르던 순진무고한 신자들 모두를 독극물로 집단 사살시켰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크던 작던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파괴시키며 사기사건, 간음사건, 재정 부정사건,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사건, 교회 내 난투극 사건, 총회장 및 각종 회장선거 불법 사건, 무단 노회, 총회 탈퇴사건 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사람을 살리는 복음, 믿는 자에게 소망을 주는 복음, 순종자에게 기쁨과 평강을 주는 복음이 때때로 잘못된 지도자에 의해 왜곡되고 비뚤어지고 오도되어 잘못된 결과를 낳는 것을 볼 때 종
교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재삼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맹신자, 광신자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를 택해야 하며, 어떤 설교를 들어야 할 것인가를 전혀 고려치 않고 잘못된 곳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Jim Jones는 1956년 25세 때에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신유은사자로 활동하였기에 많은 병자들이 몰려왔다. 1965년 북캘리포니아로 옮기면서 교인 수는 천 여명이 넘었다.그는 설교 잘 하고, 유머 있고, 노래 잘 하고, 병자 잘 고치고, 노인복지를 위해 일하고 어린이들을 잘 돌보는 사회운동가란 명성을 얻었다. 수많은 군중심리에 의해 강단에서 일어나 걸으라
고 소리치면 환자는 곧장 일어서고 걸으면 청중은 박수를 치고 환호가 터진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3,000여명 가까운 신도가 모인다. 이곳에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973년 남미 가이아나에 4,000 에이커의 땅을 매입하고 Jonestown을 만들고 그곳으로 교회를 옮긴다. 여기에서 많은 신자들이 떨어져 나간다.그 때 그는 안 가는 자는 Defector(배반자)이다. 반역자, 변절자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천국에 못 간다고 말함으로 많은 신자들이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때 동참치 않은 자는 다 살아났다.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가이아나로 옮기면서 거주할 주택, 협동농장, 교회 등을 만들어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수시로 예배, 기도, 찬양, 파티 등을 베풀며 지상 천국으로 묘사했다. 새로운 노래를 지어 배우고 부르
게 하였다. 간음사건도 저지르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을 총기로 무장하고 탈출 못하게 막았다. 1978년 11월, 샌프란스시코 상원 Ryon의원, NBC 리포 등- 수 명의 조사단이 Jonestown을 방문하여 조사케 되었다. Jonestown을 떠난 사람을 자유의사로 결정하여 30여명을 비행기에 태우고 이륙하려는 순간, 장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트럭에서 내리면서 Killing Everyone이라고 소리치며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그 자리에서 Ryon 의원, NBC 특파원, 보좌관 등 여러 명이 총격으로 사망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정글로 도망친 여러 명이 다행히 목숨을 건져 그 때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해 주었다.그 후 Jim Jones는 6개월 전에 미국에서 주문해 온 독극물 Cyanide로 990여명을 독살했다. 마지막 설교는 “우리는 더 좋은 부활을 위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먹어야 된다”는 것이다. 자신은 독극물을 마시지 않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마지막 남은 경비원 3명은 모두 죽은 것을 확인했고 살아서 도주했다. 정부는 흰색 알미늄 관에 시체를 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이송하여 함께 매장하였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교회에 나갔다가 못된 지도자 만나 온 식구가 독살 당했다.살아 남은 자들은 말한다. “교회 나가기가 무섭다” “목사를 믿을 수 없다” “혼자 명상하고 기도하며 지낸다” “그 사건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목사들에게 좋은 경종을 주는 사건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스스로 왕이 되고 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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