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최악의 경제위기’ 이겨내야 한다

2008-10-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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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갈수록 태산이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가 구제금융 조치를 하고 금리를 인하했지만 세계의 주식시장은 추락하기만 한다. 개인이나 기업, 은행, 심지어는 국가들마저 금융위기 상황에서 돈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여 기축통화인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 바람에 한국에서는 환율이 급등하여 환란을 겪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는 총체적 위기란 점이 심각하다. 처음에는 주택시장의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우려했다. 그 후 고유가와 농산물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 현상이 나타나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겹친 악성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했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주식시장이 추락하고 환란까지 겹쳐 세계경제는 침체가 심화되어 디플레 위험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디플레가 심해지면 공황이 되므로 지금 세계 경제는 1929년 대공황의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번 경제위기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경제공황까지는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그 때와 달리 각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국제적 공조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투자은행의 파생상품이 파탄하면서 다른 나라의 은행, 투자기관은 물론 실물경제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 세계경제가 그 당시보다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주택시장의 붕괴 이후 투자은행의 파산과 주식시장의 추락으로 미국에서만 1조4,000억 달러의 자산가치가 증발한 것으로 IMF는 추산하고 있다. 미국만 이 정도이니 세계 각국을 집계하면 엄청난 액수일 것이다. 자산가치가 줄었으니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불거졌던 지난 달 중순부터 미국인들은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소매업은 매상이 급감하여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더 문제이다. 소비가 감소하면 제조업이 타격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서비스 분야까지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IMF는 내년도 미국경제를 제로 성장으로 전망했는데 미국 경제 전체가 제로 성장이라면 서민층의 체감경기는 마이너스 성장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 대선후보들이 각종 경제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추락하는 경제를 당장 살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미국은 주택 가격의 하락과 금융 경색, 주가 하락이 실물경제의 불황과 겹쳐서 악순환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되는 내년에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게 될 것이며 우리는 생애에서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이와같은 경제위기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범람하여 도시와 마을을 집어삼키는 자연재해처럼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 폭풍우와 홍수 속에서 나무가지를 붙잡든 널판지를 붙잡든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는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렇지 못하고 폭풍우와 홍수에 휩쓸린다면 생명을 잃게 된다. 이 경제위기에서 살아 남으려면 홍수에 떠내려 가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온 힘을 다하여 사투를 벌이듯이 단단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가 잘 아다시피 위기는 또한 기회이기도 하는데 우리 앞에 다가오는 큰 위기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경제위기는 왜곡된 경제현상이 교정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집값이 몇 년 사이에 두 배, 세 배씩 뛰고 월스트릿에서 젊은이들이 숫자놀음으로 연간 수백만 달러나 수천만 달러를 버는 경제가 어느 시점에서 붕괴하지 않고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공황 때 사회보장제도 등 각종 시스템이 도입되었듯이 이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미국과 세계가 이 경제위기를 잘 넘긴다면 세계의 경제는 더 안전하고 튼튼한 기초 위에 서게 될 것이다.

경제위기는 개인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근검절약의 정신을 일깨워 주게 될 것이다. 경제위기를 이겨낸 기업은 불황을 견디지 못해서 쓰러진 기업의 몫까지 흡수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또 금융경색이 어느 정도 풀리게 되면 집 없는 실수요자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가 이전보다 수월해질 것이고 부동산과 주식투자의 호기를 잡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경제위기를 이겨내서 어려운 시련을 절호의 기회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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