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민군 중좌 김 용 목사되다

2008-10-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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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구(목사/탈북난민보호 미주협회장)

2008년 9월 20일 토요일은 김용씨에게는 천지가 개벽하는 날이었다. 탈북한지 10년, 미국 온 지 6년만에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날이다.누구보다 내 가슴이 벅차고 감개무량한 것은 북한 인민군 보위부 중좌 출신 김용씨가 목사 안수 받는 사건이 아닌가!
그는 92년 상좌로 진급하는 해인데 신원조회에 아버지가 개성 부근에서 미 제국주의자의 간첩 노릇을 했다고 뒤집어 씌워 하루아침에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나가려고 모범수 노릇을 했으나 갈수록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처럼 사상범으로 몰려 들어온 사람들은 한 사람도 살아서 나간 자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수용소 사람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노동, 고문, 학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따금씩 행해지는 총살형은 그의 가슴을 뜨끔뜨끔하게 만들었다.그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개천 관리소를 6년만에 탈출했다. 중좌까지 오르면서 터득했던 지략, 전략 방법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중국을 거쳐 몽골로 가는 중에 며칠간의 사투는 정말 생명을 건 탈출이었다. 몽골에서 처음에 체포되었으나 그것은 북한 수용소 탈출에 비하면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웠다고 한다.이윽고 몽골주재 한국대사관을 뚫고 들어갔고 보위부 중좌 출신임을 밝혔다. 뉴욕의 북한실정 보고회에서 처음으로 북한에서는 식량난이 극심하여 인육 먹는 것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폭로했다. 자기 백성을 사상문제로 걸어 정치범 수용소에서 재판도 없이 아무 때나 처형되는 숫자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DJ 정부는 빨간색의 정부라 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광주사태 때 많은 특공대를 광주에 파견했으며 가족이 없는 사망자는 모두 북한 간첩들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LA에서 탈북자 정착과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일하겠다며 계속 머물더니 거기서 형설의 공을 쌓아 드디어 목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USCIRF(국제 종교자유조사 미국위원회) 임원인 David Hawk씨의 저술 에 정치범 수용소의 위치를 소상히 밝혀준 자가 김용씨다.

2004년 4월 18일, 뉴욕에서 개최된 Amnesty International에 초청되어 북한 노예수용소 참상과 북한 인권 참상을 강연하여 참석자 2,000여명이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했고, 2005년 3월 용천사건을 돕기 위해 LA 동포들이 모금한 돈을 북한 참사관에게 전달하는 자리에서 LA 한인회장의
멱살을 잡으며 강력히 항의했던 대범의 사나이 김용씨가 드디어, 미국에서 자기 백성을 도탄에서 구원하는 최선봉장이 되기 위해 목사가 됐다.
‘요덕 스토리’의 뮤지컬 배우들이 수 백번 외치던 소리 “하나님이여 남조선 사람의 기도만 들어주지 마시고 요덕수용소 사람들의 외침도 들어주셔서 하루빨리 구출하소서”란 절규를 들으며 북한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출키 위해 오늘도 이곳 저곳에서 일꾼들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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