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과 청소부

2008-10-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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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얼마 전 한국의 어느 TV에서 재미난 코미디 한 장면을 보았다. 어느 서민 가정에서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나이의 아들에게 아버지가 “너는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물었다. 이 물음에 아들아이가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스스럼 없이 하는 대답이 “대통령!”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식으로 미소를 머금은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그래 네가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는 뭐 시켜줄래?”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시골 면장이라도 시켜준다든지 무슨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아이의 대답이 너무나 기대와는 달리 터무니 없는 동문서답이어서 모두 배꼽을 잡고 웃는 판이 되었다. 아이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탕수육!”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무슨 자리를 마련해 주겠느냐는 뜻으로 뭘 시켜 주겠느냐고 물은 것인데 아이는 먹는 음식을 시켜준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아이의 생각은 시골 서민들이 여유 돈이라도 생기면 중국집의 탕수육을 시켜 먹었던 회식 때를 생각해서 파-티를 하겠다는 생각이었으니 아버지가 생각하듯 아버지를 덩달아 벼슬자리를 얻어 준다는 것이 아니었으니 아버지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세대의 사고인 듯 하여 웃기보다는 오히려 흐뭇한 생각이 든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아이들의 대답은 그들이 자라는 사회환경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한국 아이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보이는 한국 사회가 모든 것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대통령이 누구인가는 밑바탕의 서민들에게도 결정적인 변수인 기형적인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다.이런 전혀 뜻밖의 대답 때문에 역시 웃음판이 된 또 다른 기억이 있다.

나의 막내가 대여섯 정도였을 때에 우리 가족은 맨하탄의 스타이브센트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그 때 아들에게 위의 아버지가 묻듯이 장래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 때 막내의 대답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어서 온 가족이 웃음판이 된 일이 있었다. 나도 위의 아버지의 기대나 마찬가지로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겠다든지 학자가 된다든지 하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꼽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뜻밖에도 스스럼 없이 하는 대답이 “Sanitation Man!” 즉 청소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의외의 대답이라 왜 청소부가 되고 싶은 것인지 따져 되물어 보았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대로에서 말굽같이 구부러진 길로 단지 안으로 들어오도록 되어 있는데 아침마다 청소차가 종을 울리며 이 길을 따라 들어와서 쓰레기를 치운다. 이 때 청소부들이 그 커다란 청소차의 뒤에 매달려 있다가 뛰어 오르내리며 길에 내놓은 쓰레기 백들을 차 속으로 집어 던져넣곤 하는데 이들의 솜씨는 과연 놀라울 정도로 재빠르고 세련된 것이었다. 이 광경을 늘 구경해온 아이에게는 이들의 하는 일이 무척이나 신나게 보였고 아주 영웅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이 일이 있은지 이미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그 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대답이 우스꽝스러워서가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이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에서 그들이 부러워 할만한 성년의 상이 한국 아이들이 생각하듯 대통령이나 장군 같은 권력형의 지위가 아니고 고만한 나이의 아이들이 서커스를 즐기듯 눈앞에 전개되는 신바람이 나 보이는 일이라는 것이 때묻지 않은 천진함과 순수함에서 오는 것이라 믿어 오히려 든든한 감개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만큼 사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년이 되어 출가해서 변호사가 되어 맨하탄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며칠 전 그 때의 그 청소부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또 한번 나의 관심을 끄는 대답을 한다. 그는 지금도 청소부가 되었더라면 훨씬 행복했을지 모른다고 농담을 한다. 넘쳐나는 일에 매달려 정신적 해방이 절실하기 때문이겠지만 정말이지 청소부들이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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