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울증은 삶의 독소

2008-10-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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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오랫만에 연락이 안되던 사람과 우연히 전화가 연결됐다. “우울증을 앓았다”며 누구와도 말하기 싫고 혼자 있고 싶었고,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좋아졌다고 해서 나도 40 고개를 넘으면서 지독한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힘들게 보냈다고 하니 나같이 씩씩한 사람에게도 그런 증상이 있었냐며 반가워하며 아주 공감이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주거지를 뉴욕으로 옮기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새 삶을 시작해야 했던 시절에는 누구든 한 번쯤 죽도록 힘들었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 안정된 후 결혼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바쁘게 살다보니 갑자기 40이 되어 ‘내가 여태 뭐하고 지냈나’ 생각하게 돼 공연히 눈가의 주름만 신경이 쓰여져 성형외과에도 문의하러 다니곤 했다. 거울 앞에 앉으면 너무 많이 늙은 것같아서 비가 와도 슬프고 눈이 와도 슬프고, 남편이 잘 해줘도 우울하고 못 해주면 더 우울하고, 온통 세상이 슬프게만 보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런 우울증의 골짜기를 지나고 보니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첫째는 내가 겪어본 일이라서 현재 그런 고통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 위로해 줄 수 있는 폭이 넓은 사람으로 성숙하게 된 것이고, 두번째는 그런 우울증을 겪고 나니 인생에 대해서 더 풍부하고 넓게 생각하며 감사하고 조그만 것에도 만족하며 기쁨을 느끼게 되는 그런 장점이 있다.

인생은 영원히 사는 게 아니고 영어의 표현같이 ‘Expire’, 배터리가 수명이 다하면 쓸 수 없는 것같이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있으므로 이 한정된 삶의 기간 동안 희로애락을 골고루 맛보면서 우리의 삶이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사랑하고 배우며 발전하고, 작고 큰 목표에 도전하면서 익숙해지며 이해하고 용서하고 옳지 않음에 분노하고, 옳든 그르든 수용하고 좋은 점은 모방하고 끊임없이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야 할 의무와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인생이다.

그리고 남의 의견에 너무 자신을 속박하며 살지 말고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나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있고, 또한 나를 좋아하고 따르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므로 너무 남의 이목에 집중하거나 남이 나에 대해서 말을 해도 담담해야 한다.

남들은 나를 좋아해서도 내 말을 하고, 나의 의견이나 나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또 어떤 때는 심심해서, 또 외로워서, 관심이 있어서, 혹은 부러워도 자주 얘기하게 된다.내 판단이 정당하면 담담하게, 남의 비위 맞추려다 실망하고 실수하고 섭섭해 하고 하다 보면 우울증에 쉽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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