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살은 해선 안된다

2008-10-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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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환(뉴저지)

요즘 서울에서 자살 사건들이 거의 매일 신문에 올랐다. 심지어는 목사나 승려가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도 읽었다. 그러다가 유명 연예인의 돌연한 자살이 큰 화제가 되어 모든 사람의 큰 관심사가 되었다.
사람들이 자살을 그가 직면한 한계 상황의 맨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현실 도피이다. 더군다나 자기가 낳은 아들 딸에 대한 무한 책임을 회피하는 자살은 어떻게도 변명할 수 없다.
그것 외에도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 그와 정을 나눈 형제 자매, 그리고 그를 돌봐준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은혜와 책임을 벗어나려는 아주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는 엄청난 빚을 지고 또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유교적으로 보면 자살은 그를 낳아 키워준 부모에 대한, 그리고 좀 더 나아가 그의 조상과 가문에 대한 배은망덕이 된다. “우리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그 신체를 손상하지 않고 잘 보존해 나가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가르쳤는데 자살은 그 효도의 시작부터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어 큰 불효가 된다.불교에서는 사람이 자살을 하여 죽으면 훗날 다시 태어나 그가 자살했던 그 한계 상황에 다시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한계 상황은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것이며 아울러 반드시 극복해 넘어가야지 자살이나 그 어떤 수단으로도 회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불교적으로 봐도 자살은 부질없는 짓이다. 또 자살은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 교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이 되어 어떤 경우에도 자살을 하면 안 된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니체가 “자기 운명을 죽도록 사랑하라(運命愛(Amor-Fati)”고 강력히 주장한 것도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통하여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본다.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목숨을 하나님의 사전 동의 없이 자기 스스로 끊는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기독교인으로 자살하는 사람은 저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여하한 경우에도 자살하면 안 된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면서 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키에르케고르). 즉 절망은 우리를 죽음의 한계 상황까지 몰고 가지만 그 절망이야말로 우리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자살은 어떻게 생각해도 큰 범죄이며 해선 안 된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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