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최진실 죽음과 살아있는 자들

2008-10-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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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얼마 전 탤런트 안재환씨의 자살에 이어 최진실씨가 또 자살을 했다. 최진실씨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한인들에게 무척이나 사랑을 받아왔던 한국 최고 여자 탤런트 중의 한 사람이다. 자살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죽은 자만이 알고 있다. 두고 간 두 아이와 그 가족들 등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 Durkheim)은 자살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석했다. 첫째는 이기적 자살, 둘째는 이타적 자살, 셋째는 숙명적 자살, 넷째는 아노미적 자살 등이다. 이기적 자살이란 자신만의 도피구를 찾아 시도되는 자살이다. 이타적 자살은 노인들이 노쇠하여 병들었을 때 주위 가족들을 위해 하는 자살 같은 것이다. 분신자살도 여기에 속한다.
숙명적 자살은 노예 사회와 혹은 포악적인 집단의 극한적인 상황에서 죽기보다도 살기 힘들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자살 등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학적으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유형이다. 개인의 부적응과 이탈, 소속감의 상실과 지배적인 규범이나 가치가 없어지고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살 현상을 가리킨다.


이것으로 볼 때 최진실씨의 자살은 아노미적 현상의 자살이 아닌가 싶다. 25억이나 되는 안재환씨와의 사채 연루설과 사회적 병리 현상인 악플(악한 댓글) 등도 그의 자살을 부추긴 것 같다. 또한 최고 자리에 오른 자가 갖는 인기 유지에 대한 압박감과 이혼 후유증 등이 최씨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하다 아노미 현상에 빠져 결국 목숨을 끊지 않았나 보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 중 가장 귀한 것 중 하나는 자유의지다. 자유의지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의 가치 중 하나다. 자유의지 속에는 자존감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에게서 자유의지를 빼내어 버린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될 것이다. 인권은 자유의지에의 존중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권이 배제된 독재국가에선 자유의지는 말 뿐일 것이다. 자살은 자유의지를 나타내는 극단적 행동 중의 하나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살아가고 있지만 스스로 생명을 끊을 수 있는 존재란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하늘과 세상에 대한 도전 중 자살보다 더 강력한 수단은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 자체는 모든 가치를 포기하는 자유의지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살은 잘못된 자유의지의 선택이요 행동이다.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혼란에 빠지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나다니엘 호손이 지은 ‘주홍글씨’에 보면 한 여인이 나온다. 그는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평생 앞가슴에 주홍글씨인 ‘A’, 즉 ‘Adultry’ 간음했다는 표를 달고 살아야 될 징벌을 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그 표를 달은 채 사랑을 배신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간다.

소설 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헤스터처럼 세상이 모두 저주하여도 살아야 한다. 그것만이 하늘이 내려준 하나밖에 없는 생명에 보답하는 길이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는 다 죽는다. 빨리 죽느냐 늦게 죽느냐의 차이다. 먼저가고 늦게 가느냐의 차이뿐이다. 한 번의 목숨은 한 번으로 끝난다. 죽음이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관문이다.
그러나 사는 동안만은 잡초와 같이 잘 살아야 한다. 밟으면 밟힌다. 밟을수록 다시 일어나 태양을 바라보는 잡초와 같은 끈질김으로 살아가야 한다. 죽는다고 해결될 것은 없다. 자기 혼자만 죽는 것뿐이다.

중국의 ‘한신’이란 장군은 장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량배들의 바지가랭이 사이를 지나야 했을 상황에서는 그 밑을 기어서 지나가 목숨을 부지한 적도 있었다.그렇듯, 살아야 한다. 반드시 잘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하늘이 내려준 생명의 은혜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자유의지는 죽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희망의 삶을 선택하여 더 좋은 길로 잘 살아가라고 주어진 것이다. 살아야 길이 열리고 해결책이 보인다. 자살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심정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위세척으로 죽기 바로 전 살아난 사람의 얘기다. 자살하기 전 반드시 우울증과 불안이 오래 동안 따른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된다. 자신을 지배하는 규범이 무너지고 가치가 상실되는 혼란된 심정이 된다. 아노미 현상이다. 자살 시에는 충동이 앞서 순식간에 결정해 버린다. 최진실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최 씨는 자살하기 전 매니저와 소주를 세 병이나 마셨다 한다. 술기운이었다면 자살충동을 더욱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한 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남은 복중의 복이다. 스스로 생명을 끊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 잘 살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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