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곡된 역사와 ‘간도 되찾기 운동’

2008-10-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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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우정공무원)

“기자조선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라는 한(韓)민족 사관정립(史觀定立)의식 개혁회의 상고사 제 4차 강의가 9월 15일 코리아빌리지 열린공간에서 있었다. 강사로 나온 김태영(폴 김)박사는 인사말에서 국호를 조선(고조선)이라 하는 나라(진한지역)를 BC 2333년에 세운 단군 왕검이 통치
지역 변한과 마한(한반도)에 부(副)왕을 각각 두었다.

변한지역의 부왕들 중 69대 기유왕을 비롯 74대까지 기씨 성 여섯 왕이 있었지만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기자(箕子)와 여섯 왕들이라는 동성이긴 하지만 연대가 최소 736년이나 차이가 나옥,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 왕으로 봉했다는 사마천의 사기를 전면 부인한 한나라 반고의 한서사기에 기자는 죽임을 피해 고조선으로 피신, 도망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면서 기자조선처럼 있지도 않은 왜곡 역사들의 허구성은 일제 식민사관의 잔존이라고 일축했다.


1950년 대일협상을 앞둔 주일대표부가 작성한 정부 문서가 55년만에 공개되었는데(2005년 8월 26일) 간도가 우리 땅임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정부 공식문서로 영토범위를 서위(西爲)는 압록, 동위는 토문이라 했고, 토문강의 위치를 링파얼하에서 출발 웨이쯔허 하류와 합류하는 강으로 기술했다. 또한 백두산 정계비에 조선과 청의 경계선으로 언급된 토문(土門)강이 중국의 주장대로 두만강이 아니라 쑹화(松花)강 지류임을 중국정부가 인정한 1960년대 외교문서가 얼마 전 공개된 것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 영토 경계 증거서류에 충분하다.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카이로 선언(1943년) 및 포츠담 선언(1945년)을 일본은 1945년 항복문서에서 수락하였고 이에 따라 1941년 12월 9일 이전에 일본이 체결한 모든 협정은 무효로 한다고 중-일 평화조약 4조에 명문화 되어있어 1909년의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이다.

한민족 사관정립 의식 개혁회의 상고사(기자조선) 강의에 앞서 미주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간도 되찾기운동본부(회장 윤낙현)’ 산하 뉴욕지부가 호주지역 해외지부에 이어 두번째로 결성 선포하고 한국 간도학회 및 간도 되찾기운동본부와 향후 긴밀한 유대를 강화함은 물론 한반도 3배의 영토임을 홍보하고 민족의 숙원인 옛땅을 찾는데 일조할 것을 다짐했다.이같은 우리 땅 찾기 운동과 2개월마다 갖는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세미나에 많은 한인들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램이다.연락 718-886-0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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