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비빔밥과 코리안 퍼레이드

2008-10-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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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의식주라고들 말한다. 의복과 음식, 그리고 집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그 시대의 문화,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옷을 입으며 어떤 음식을 추구하며 또 어떤 곳에 사느냐 하는 것이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연속극 중에 ‘대장금’이나 ‘식객’이 인기를 끈 것은 음식을 통한 인간의 삶을 잘 조명해주고 인간성과 시대적 삶의 형태를 리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중국은 올림픽을 세계인의 이목 속에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개막식의 화려함과 웅장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통일된 동작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중국은 올림픽을 기회로 중국의 문화와 경제력과 힘을 세계에 과시하고자 하였으며 실제로 그런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그런데 그 많은 노력과 수고를 무색케 한 사건이 바로 분유에 탄 멜라닌 사건이었다.


멜라민사건은 중국음식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자국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생명을 담보로 부를 추구하고자 한 추악한 면만 세상에 드러났다. 세계가 이 일로 경악한 것은 바로 음식과 생명이 연결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음식은 생명과 또 그 나라의 문화, 그리고 신뢰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음식은 또한 단순히 배부름이 아닌 우리의 정서적 만족을 주는 것이다. 온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준비된 따뜻한 음식은 피곤을 풀기에 충분한 정서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음식은 또 사람들 간에 서로 교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단순한 사귐이 음식을 함께 나눔으로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는 매개역할을 한다. 음식은 특히 그 나라의 얼굴이자 얼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파자는 이태리 음식을, 스시나 사시미는 일본, 김치나 불고기, 비빔밥은 한국을 생각나게 한다. 그중에서도 요즘 미국, 특히 뉴욕에서 비빔밥에 대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은 경제대국이긴 하나 그 역사가 짧아 자국의 문화가 미처 싹트지 못해 유럽에서 유입해온 각국의 문화가 마치 미국의 문화처럼 비쳐질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인들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진 민족이라 할지라도 빈부에 따라 그 민족을 대접하기도 하며 천시하기도 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미국의 냉혹함인지 모른다. 그런 연유에서 각 민족들은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퍼레이드를 준비하려 하지만 자랑할 만한 자국의 문화가 별로 없는 민족들의 행사계획은 번번이 무산되곤 한다.

다양성의 문화는 그 민족의 화려함과 우수성을 의미한다. 더욱이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례가 쏟아져 나오는 한국인들은 뉴욕시가 자랑하는 이민자 집단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인사회의 경이적인 기록은 뉴욕시 모든 이민자들이 혀를 내두르며 놀라워하는 업적이다. 이것은 한인 이민자 모두가 미국의 특성인 샐러드 보울, 즉 멜팅 팟을 강조하는 이 나라의 속
성을 너무도 잘 알고 또 생활에 적응함으로써 한민족의 우수성과 독창성, 그리고 근면성과 성실성을 확실히 보여줌에 따라 맺어진 결실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 특유의 비빔밥 문화를 이 땅에 잘 접목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인사회에 비빔밥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뜨거워지는 것도 이 땅에 우리 한국 고유의 문화와 퍼레이드를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게 만드는 이유다. 우리가 흔히 먹는 비빔밥은 그런 점에서 새롭게 조명이 되어야 하고 비빔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이 땅에 폭넓게 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들게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어느 민족보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비빔밥 문화를 지닌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 왔다. 이 땅에서 어느 민족보다 동화가 쉽게 되고 무엇을 하던 성공하는 것에는 뭐니 뭐니 해도 비빔밥 문화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한류문화의 하나인 비빔밥에 대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오는 10월 4일 뉴욕 심장부인 맨하탄 한복판에서 열리는 코리안 퍼레이드 후 비빔밥이 세계인에 선보인다고 한다. 세계 각국 인종이 모여 사는 이 뉴욕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소개 행진과 비빔밥 시연회, 이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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