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전시회장에서 느낀 난감함

2008-10-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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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취재2부 기자)

이우환 화백의 첫 번째 미국 개인전이 두 곳의 페이스 화랑(미드타운과 첼시)에서 10월 까지 열리고 있다. 그림의 가치를 꼭 돈으로 환산할 순 없지만 최근 수년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거래되고 있는 그림 가격을 감안한다면 그는 현재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다.

이 화백의 명성대로 오프닝 행사는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그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기피하는 것을 잘 알기에 한 마디라도 작가의 멘트를 얻어야 한다는 직업적인 부담감이 있었지만 이 화백의 그림을 직접 본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솔직히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난감함이었다. 한마디로 기자에게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지나치게 어려웠다. 평론가들의 해설을 미리 꼼꼼히 읽었고 또한 지극히 철학적이고 난해한 작품세계를 가진 화가라는 것도 알았지만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위를 살펴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들의 표정을 봤다.


“역시!”라는 찬탄이 얼굴에 묻어나는 미술 애호가도 보였지만 “나는 잘 모르겠지만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십만 달러에 거래되는 화가의 작품이니 뭔가 있는 것이겠지”라며 애써 미소 짓는 어색한 표정도 많았다고 느낀 것은 기자의 편리한 해석일까? 기자가 스스로의 미숙한 안목과 무식함에 자괴감을 느끼며 작가에게 물어볼 한두 가지 질문들을 공들여 정리하고 있을 때 마침 이 화백이 갤러리에 들어섰다. “저 단 1분만 말씀을 나눠도 될 까요?”라는 공손한 청을 작가는 “절대, 절대 안 합니다”라
고 매몰차게 거절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문화 담당 기자라고 해서 꼭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거나 더 나아가 평론가 수준의 안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서 이전 인터뷰를 참조하거나 수많은 간접 자료에 의존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은 작가와의 심도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경우다. 이우환 화백 같은 거장을 직접 만날 기회가 어디 흔한 것인가.

기자의 부족한 시각에 빛을 비쳐줄 한 마디 설명을 직접 듣고 혹시 나처럼 고개를 갸우뚱 했을 독자들에게 그 설명을 전해줄 기회는 아쉽게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절대” 없을 것이다. 아마 이 화백은 기자가 아닌 일반 관객의 물음에는 친절하게 답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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