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기 종교가 제일이라 떠드는 바보들

2008-09-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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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태(종교인)

오랜 기자 생활을 경험한 뒤 1956년 이후에는 대중적인 역사학자로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바 있는 미국의 여류 저술가 바바라 터치먼(Babara Tuchman 1912~1988)이 1984년에 (이것은 청림출판사의 번역서 제목이고, 출판사 ‘자작나무’에서는 ‘독선과 아집의 역사’라 하여 출간)이라는 595쪽에 달하는 대하 다큐멘타리를 내놓아 독서계의 풍작에 크게 공헌했다. 작가의 의무는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붙잡는 것이라고 말한 터치먼 여사는 역사를 읽을거리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고대 트로이에서 현대 베트남까지의 전쟁과 정치사에서 인간 어리석음/아둔함의 사례들을 고찰하면서, 이것들은 특정한 민족이나 사회에만 속한 스캔들이 아니라 오늘날 하시 하처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하였다.터치먼은 역사에 나타난 인간 어리석음의 네 가지 유형을 부각시킨다. 첫째는 폭정(압정), 둘째는 야심(탐욕), 셋째는 무능(타락), 넷째는 독선(아집)이다.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네번째 유형을 다루고 있다. 독선과 아집이라는 질병이 비극의 첨병을 담당했다는 것이다.닉슨은 월남전을 끝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사이공의 마지막 날’을 낳고 말았다. 역사는 ‘어리석음/아둔함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바보들의 행진’은 계속된다. 독선과 아집이라는 병은 불치의 병일까? 역사의 페이지들을 얼룩지게 하는 바이러스인가? 필자는 특히 종교 속에 스며든 이 바이러스를 이 자리에서 문제삼는다.옛날에도 있었지만 근래에 자기 종교가 제일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무리들이 나타나 가뜩이나
어수선한 우리의 공생활 분위기를 더 탁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는 엄연히 다문화, 다종교, 다민족으로 촌락을 이루고 있다. 이 현실(Reality)은 상생 아니면 공멸이라는 원칙을 선포한다.내 것만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전쟁/분쟁밖에 일어날 것이 없다. ‘전쟁의 광기’를 한번 들여다 보자. 거기에는 독선, 아집, 배타의 깃발만이 펄럭인다. 내 것이 제일이라고 나팔 불고 다니는 사람 치고 자기 것에 자신을 가진 자 드물다. ‘방어벽’은 이미 심리학적 결손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이 자기 것을 뺏을까봐, 무엇이 자기를 누를까봐 겁에 질린 사람은 배타적 방어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당당하지 못하다.

문화의 우열, 종교의 우열을 논하면 우리의 행성은 제대로 궤도를 운행할 수 없다. 자기 중심주의는 만악의 근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황금율이라 부른 종교를 필자는 매우 존경한다.종교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는 결코 있을 수 없다.(한스 큉) 물론, 종교간의 질적인 대화
를 모색하는 종교들의 고민을 우리는 모르지 않다. 절대주의를 고집하자니 상대주의가 울고 상대주의를 허용하자니 절대주의가 운다. 둘 다 종교의 존립을 위협하는 ‘의제’이다. 왕년의 클래어먼트 대학의 석학 존 캅(John Cobb)은 결국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Beyond bsolutism and Relativism)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모든 양심적인종교인들 앞에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제와 정직하게 씨름할 줄 모르는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들은 잠재적인 전쟁 도발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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