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과 인생의 선택

2008-09-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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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회계사)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는 돈으로 그 참여와 시청자를 유도하는 것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하여 실제 생각과 대중 앞에서 공개하는 마음과의 갈등을 돈의 힘을 빌어 드라마틱하게 이끌어 간다. 부부를 참여시켜 솔직한 마음을 공개하게 하고, 개인적인 비밀, 심지어 간통 사실까지 고백하게 한다. 그 고백을 유도하는 힘은 자신의 양심도, 상대를 사랑함도 아닌 오직 돈의 힘 뿐이다. 돈의 매력과 힘, 아마도 그를 마력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하다.

그 돈의 마력을 빌어 진실을 밝힌다. 그 진실은 대부분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그 상처를 돈의 위로로 상쇄하고 그 상처줌도 정당화 한다. 그 상처를 돈으로 보상받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 상처로 이별을 맞는 부부도 있다. 누구도 그 선택은 강요하지 않는다. 중도에 스스로 하차할 수도 있다. 돈과 고통, 진실을 바꾸는 선택은 오직 참가자의 몫이다.진실을 밝힘은 종종 그를 밝히는 자와 또 그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에게 상처를 준다.서로가 그 상처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이 그를 밝혀야 할 것이다. 진실이라도 감추어져야 할 것이 있다. 진실을 감추는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다. 그 고통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가 그 고통을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가? 또는 그 고통이 승화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스스로 그 고통을 삭이는 것이 그를 승화시키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다.


승화되지 않는 고통은 우리 인생에 필요 없다. 신은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은 결국 승화된다. 그 고통을 통하여 자유를, 사랑, 이해심을 갖게 한다. 신을 알게도 한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목적이다. 그 고통의 근원에 돈, 욕심이 존재한다면, 그 고통은 결국 더 큰 고통을 잉태하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 그 고통의 종착지가 아니니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갈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 고통의 의미를 바꾸지 못한다. 신을 비난할 수도 없다. 신은 선택권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을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 어쩌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의 의미를 깨달았다. 스스로에게 겸손해질 수 있었기에, 아마도 그것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TV 프로그램 자체를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의 사악성을 알고자 함이다. 무모한 욕심을 다스릴 지혜를 갖기 위해서다. 돈의 마력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어두은 한 면을 안다는 것이다.돈만을 보고 달려갈 때, 돈의 위력, 권세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다. 결국 돈의 주인이고자 하던 이가 돈의 노예가 된다. 그것은 궁극적인 고통이다. 그런 이는 인생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다.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선택이 그로 인해 결정되어져서는 안된다. 인생은 돈을 추구하기보다는 훨씬 더 가치있는 것이고, 그 가치를 찾아가다 보면 자유함 속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고,또 필요한 만큼, 어쩌면 더 풍족히 돈도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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