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정식 집의 코미디같은 샐러드

2008-09-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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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전통 식생활연구원장/세계 한식요리대회 조직위원장)

‘한정식’ 하면 한식의 코스 요리를 말한다. 그런데 한 상에 음식을 다 차려 내오는 공간 전개형 식단을 하는 집도 간판에는 한정식집이라고 붙어 있다. 이게 바로 우리 식생활 문화의 현주소다.

엄밀히 말하면 한정식은 한식을 서양의 시간 계열형 식단(코스)과 퓨전화 한 것이다.공간전개형 식단, 즉 한 상에 차려 내오는 집은 한정식 집이 아니라 한식 또는 반상집이다. 우리의 전통은 바로 한 상에 차려 내오는 공간전개형 반상문화다. 이 반상을 혼자 먹을 수 있도록 독상으로 차려내는 것, 즉 쟁첩(뚜껑이 있는 반찬그룻)의 수에 따라 3첩반상, 5첩반상, 7첩
반상으로 불려지게 되는 것이며, 이 반상은 혼자 잔반이 남지 않도록 알맞게 차려내는 것이다.그리고 여럿이 함께 앉아서 먹는 것을 주안상 형식의 건교자(乾交子), 밥상 형식의 식교자(食交子), 주안상과 밥상 형식을 함께 갖춘 얼교자(얼치기상) 등 3가지가 있는데 이 교자상도 역시 모두 공간전개형이다.


이렇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전개형 식단인 반상이 코스요리로 변하면서 한정식이라는 신조어가 태생된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서양식 코스요리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전개형 식단은 수요자(식사를 하는 사람)가 식행위를 주도하지만, 코스요리는 공급자(요리사)가 식행위를 주도해 수요자는 메뉴 선택권만 갖고 있을 뿐, 요리사가 주는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맛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다.우리는 주식과 다양한 부식 나름대로의 맛도 즐기지만 주식과 부식, 부식과 부식을 함께 먹으므로 그 어우러짐으로 인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반찬간의 맛의 어우러짐으로 인해 5미 뿐만 아니라 6미, 7미 등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다. 개개인의 성별, 건강상태, 컨디션에 따라 음식을 차별화해서 즐길 수도 있다.어찌보면 공간전개형 식단은 합리적인 건강식단으로 권장할 만한 것이다.일본의 사각쟁반에 개개인별로 공간전개형으로 차려내는 정찬요리 역시 우리의 독상 문화에서 비롯된 문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세련된 문화를 고루하다고 생각하는지 전혀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그러면서 간판에는 버젓이 전통 한정식집이라고 한다. 아이러니도 보통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우리는 배선 방법만 변한 게 아니라 한식 요리법도 아주 많이 변해 있다.원래 한식은 까다롭지만 여러 단계의 조리방법을 거쳐 깊은 맛이 나오는데 비해, 최근 한식은 레서피를 중심으로 간편 단순하게 조리를 해 한식 특유의 깊은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재료만 국산을 사용했지(최근엔 재료도 세계화) 조리법은 일식과 양식 조리법으로 한식
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더 아이러니한 것은 한정식 집에서 기본적으로 나물, 채소를 절여 먹고, 데쳐 무쳐 먹고, 삶아 국 끓여 먹고 하는데 전채요리로 우리의 걷절이만도 못한 샐러드가 나온다.

스테이크 등 주로 하는 서양 사람들이 섬유질 섭취를 위해 생야채를 그대로 썰어 소스를 부어 먹는 샐러드가 한정식 집에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소 여물 썰듯 생야채를 마구 썰어 소스 부어 먹는 것도 무슨 요리라고 하나. 한정식집의 샐러드는 코미디 중에 코미디다.
일부라고 해 두자. 한식의 기본도 모르는 한정식집 주인과 한식 조리사들이 한식을 다 망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래도 ‘퓨전 한정식’이라면 애교로라도 봐줄 수 있겠다.

일본이 서양 식단을 따라 하다 비만과 성인병 인구의 증가로 후회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웃 나라가 이미 겪은 아픈 전철을 그대로 이어받는 어리석음으로 비만 내지는 성인병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이번 LA를 방문해 모 일간지 박 모 기자와 대화 중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한식 일품요리를 메인으로 하여 미국 식단에 맞게 식단을 짜 세계화하도록 해야겠다고 말을 건네자 질색하였다.“선생님! 아닙니다. 우리 것은 우리 것 그대로를 보여줘야 합니다. 최근에 서서히 미국 주류사회 사람들도 한국음식과 전개형 식단에 매력을 느끼고 많이 찾습니다”

지금 한정식집에서 전채요리 랍시고 샐러드를 내놓으며 시대적으로 앞서 가는 식단인양 하지만 ‘김치와 샐러드’ 18세기까지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던 서양사람들의 미래 선택은 샐러드가 아닌 김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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