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식 사랑 4단계

2008-09-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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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SEKA 사무국장)

사랑에도 종류가 있고 단계가 있다. 에리히 프롬과 씨에스 루이스는 사랑을 각각 4종류로 나눴고 끌레르보의 버나드는 사랑에 4가지 발전 단계가 있다고 했다. 이런 논의는 기독교 문헌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일상 생활에도 적용할 여지가 많다.

12세기 프랑스의 수도사였던 끌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 1090~1153)는 기독교인의 사랑이 4단계로 발전한다고 했다. 가장 저급한 단계는 ‘자기를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더 발전하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버나드의 사랑 단계설은 부모의 자식 사랑에도 적용된다. 첫 단계는 부모가 자기를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다. 자식은 안중에 없다. 한인 이민 동기의 80%가 자식 사랑이라고들 하지만 액면대로 믿기 어렵다. 실제로 자녀에게 시간과 관심과 노력을 쏟는지 봐야 한다. 자식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을 만큼 일하고 돈 버는 재미에 빠진 부모는 자기를 위해 자기를 사랑할 뿐이다.

둘째는, 자기를 위한 자식 사랑이다. 자녀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큰데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성취시키려고 그러는 부모들이 있다. 자녀의 성공으로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것인데 자신도 모르게 그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는, 자식을 위한 자식 사랑이다. 사랑의 대상과 목적이 모두 자식이니 훨씬 바람직하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주도권을 부모가 아니라 자녀가 갖는 경우다. 자녀에게 끌려다니는 부모는 자녀를 제대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자녀 사랑의 특권은 의무로 변질되고 자녀들은 버릇만 나빠진다.
자식 사랑의 가장 높은 단계는 자녀를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심리학의 학습이론이 보여주듯이 사랑도 모델링으로 가장 잘 학습된다. 자녀들은 말로 된 교훈이나 돈의 구매력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해석하면서 사랑도 느끼고 교훈도 배운다.

11학년인 현수는 이미 9학년 때 300페이지짜리 장편소설을 탈고한 바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아침에 일어나 보면 새벽부터 시간을 아껴 정열적으로 글 쓰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도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기특히 여긴 아버지의 지도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은 물론이다.자녀에게 가르치고 싶은 게 있으면 자기가 먼저 해야 한다. 책을 읽히고 싶으면 책을 읽어야 한다. 근면과 성실을 가르치려면 스스로 근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르치려면 자기가 먼저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성경도 이웃을 사랑하되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그만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식처럼 가까운 이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자식을 사랑하려면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이 점은 특히 중요하다. 청소년들은 부모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존경할만한 부모의 이미지가 아이들 마음 속에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면 청소년 교육, 혹은 사춘기 교육이라는 걸 따로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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